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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명멸하던 NIN, '록 성지' 펜타포트를 밝히다

‘화룡점정’ 찍은 미 인더스트리얼 록의 대부…펜타포트, 10~12일 8만5000명 운집

2018-08-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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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난데없이 흘러나온 데이비드 보위의 멜랑꼴리한 음악이 후끈한 한 여름 밤의 공기를 서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11일 밤 9시30분 무렵,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의 펜타포트 메인 무대. 12개의 백색 조명이 어둠구석 구석을 밝히는 동안 보위의 곡 ‘서브터래니언스(Subterraneans)’가 고요히 배경음으로 깔렸다.
 
11일 나인 인치 네일스가 섰던 펜타포트 메인무대. 사진/예스컴
 
무대 세팅은 차분하다 못해 질식할 듯한 숭고함까지 느껴졌고, 무대 앞을 서성이는 관객 역시 반은 기대감으로 반은 긴장감으로 지켜보는 듯 했다. ‘NIN(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고, 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즐비했다.
 
잠시 뒤 5초 남짓한 정전과 기계 소음. 스멀스멀 자욱이 낀 하얀 연기 사이로 올 블랙 의상의 ‘손톱들’이 올라왔다. 비트감 넘치는 ‘브랜치스 앤 본스’(Branches and Bones)’ 도입부에 맞춰 관객들은 경도된 신도들처럼 함성을 내질렀다. 곧 육중한 전자 기타 소리와 폭발적인 트렌트 레즈너의 목소리, 분노 덩어리로 가득한 가사가 5년 만의 ‘손톱들’의 귀환을 알렸다. “나의 조각들은 속도가 느리지만/시간은 빨리 흘러가”
 
나인 인치 네일스 공연 모습. 사진/예스컴
 
음악을 시각적 기호로 환원하는 그들 만의 예술 세계는 화려했다. 위 아래 총 40여개의 백색 조명은 드럼 비트에 맞춰 명멸했고, 레즈너를 밝히던 조명은 배경으로 설치된 커튼에 괴수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댔다. 무대 양쪽 스크린엔 멤버들을 360도로 비쳐대는 영상감독의 흑백 라이브가 분주하게 흘렀다. 명멸하는 ‘NIN’과 ‘신도들’(관객들)이 그렇게 펜타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헤이 돼지. 그래, 너 말이야” 곡 ‘Piggy’를 부르던 레즈너는 돌연 ‘신도들’을 맞으러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공포에 몸서리치는 이가 돼지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이 곡을 손을 맞잡고 함께 울부짖었다. 다시 피아노를 치러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올라갈 때는 조그만 스피커들이 그의 발에 쓸려 내동댕이 쳐지고 있었다. 열광하는 ‘신도들’이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피며 경의를 표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 보컬 트렌트 레즈너. 사진/예스컴
 
“땡큐(Thank you).” “좋아요(Alright).” “어떻게 견디고 계세요(How are you holding up)?” 짤막, 짤막한 미니멀리즘 형태의 멘트들이 틈새를 치고 들었다. 정말 필요한 말만 하는 소통 방식이 오히려 담백하고, 품격있었다. 열광과 환호가 잇따랐다.
 
“몇 년 전 ‘히어로(Hero)’였던 데이비드 보위가 우리를 떠났습니다. 이번 곡은 ‘I’m Afraid of Americans’입니다.”
 
NIN이 세계적인 밴드로 거듭난 건 보위가 생전 자신의 투어에 그들을 오프닝 밴드로 세우면서였다. 이날 이들은 보위에 관한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셋리스트의 서두와 후반부에 보위의 곡을 병치시킴으로써 고인의 족적을 되새기려는 듯 읽혔다.
 
“따단 따단 따다” 음침한 트레너의 목소리가 울리면서 보위의 모습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생전 후배 밴드들과 해오던 고인의 음악적 교감, 인간적 유대가 NIN으로 환생하는 듯 했다.
 
반딧불 같은 조명이 산란하게 빛날 무렵, 예수처럼 긴 머리를 흩날리는 일란 루빈의 드럼 박자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텅빈 것 같은 머리/ 너의 영혼 만큼이나 까맣고/ 너에게 통제권을 주느니 내가 죽는 게 낫지’
 
2시간 반 공연의 말미는 밴드의 가장 유명한 ‘헤드 라이크 어 홀(Head a Like a Hole)’이 장식했다. 레즈너의 포효하는 스크리밍에 맞춰 관객들은 ‘텅빈 것 같은 머리’를 외치며 저주를 퍼부어 댔다.
 
나인 인치 네일스 무대. 사진/예스컴
 
‘화룡점정’을 찍은 NIN 외에도 올해 펜타포트는 국내외 신구 아티스트들의 조화로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스타세일러, 린킨파크의 마이크 시노다, 자우림, 혁오, 새소년, 피아, 크러쉬, 서치모스 등 총 60여팀이 무대에 섰고 관객들과 호흡했다.
 
‘록의 위기론’이 대두되는 환경이지만 펜타포트는 하드한 음악 위주의 콘셉트로 국내 록페의 독보적인 브랜딩을 해오고 있다. 올해도 주최 측은 EDM, 힙합 등 다양한 장르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진행함으로써 ‘록페’ 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살리되, 다양성은 유지했다.
 
13년 째 지속돼 온 만큼 팬들도 매너 있게 노는 노하우를 안다. 과격한 슬램 도중 분실물을 찾아주는가 하면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대체로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지켜가는 모습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기차놀이를 하는 펜타포트 관객들. 사진/예스컴

14일 주최 측인 예스컴에 따르면 첫날 2만명, 둘째날 3만5000명, 셋째날 3만명으로 총 8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 지난해(7만6000관객)에 비해 9000여 관객이 늘었다.
 
펜타포트 관계자는 “올해 같은 경우 111년 만의 폭염 대책으로 살수차, 쿨존, 쿨팬, 대형 텐트 등을 운영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며 “특히 서브 스테이지의 건물이 천막 형태로 돼 있어 더위를 느끼시는 관객들이 많았는데 이 부분은 내년에 추가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 별도의 보완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공연과 관련해서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공연이 역대급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아티스트와 출연 협의 시 음향, 조명, 영상 등 아티스트의 요구를 충분히 논의한 결과가 반영된 것 같다. 앞으로도 록 음악을 중심으로 하되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며 ‘펜타포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시도를 계속 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펜타포트 관객들. 사진/예스컴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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