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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언론고시생)표

2018-08-17 10:55

조회수 :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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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행방불명 신고가 접수됐다. 80대 노인부부였다. 대상의 특징은 할아버지는 최근 암에 걸렸고 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중풍과 치매를 앓고 있었다는 점. 그러면서도 항상 웃음이 많으시다는 점. 마지막 모습으로 가벼운 여행을 떠나기 위해 무거운 짐들을 들고 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별 다를 것 없는 특징에 담당 경찰은 가볍게 서류를 넘겼다.>>
 
희철은 두근거렸다.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으로 수없이 반복해온 일이었지만 돈을 세는 그의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결제. 그렇게 그는 부모님의 여행 티켓을 마련했다. 그의 부모님은 그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평생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본 적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 마다 그의 마음은 돌탑을 쌓듯이 조금씩 무거워져갔다. 그래서 그는 퇴직금으로 가게를 차리기 전 조금 돈을 떼어뒀다. 그날 저녁, 희철은 늙은 아버지에게 여행 티켓을 내밀었다. 아내의 눈치가 보이지만 순간만큼은 뿌듯했다.
 
세히는 행복했다. 몇 년간 그녀를 괴롭혀온 치매는 집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얼마 전 찾아온 중풍은 그녀의 왼쪽 다리를 앗아갔다. 간간히 정신이 맑은 날에도 그녀는 더욱 우울했다. 그러던 차에 아들이 마련한 여행티켓은 큰 선물이었다. 기다리던 여행 날 아침. 밖은 춥다며 옷을 단단히 여며주는 남편의 손길에 그녀는 거듭 행복했다. 남편의 눈이 오늘따라 깊어보였다.
 
영은은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레 그녀의 방에 온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셨다. 쪼들려가는 집안에 얹혀사시는 할아버지가 무슨 돈이 있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그녀는 감사인사도 잠시 잊어버렸다. 뻐끔거리는 그녀에게 할아버지는 대학 입학 선물 대신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손녀. 영은’ 봉투에 적힌 할아버지 글씨는 굵고 뭉툭했다. 봉투에는 빳빳한 만 원짜리 20장이 담겨있었다. 할아버지가 여행을 떠나기 전 바로 직전의 일이었다.
 
송옹은 눈물을 참았다. 아내의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녀오던 그는 그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간암 중기. 눈앞이 깜깜했다. 아내의 치료비도 점점 커져 가는데 아들내외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말한단 말인가. 내가 죽고 나면 아내는 누가 돌본단 말인가. 그날 저녁. 아들은 여행티켓을 내밀었다. 여행티켓 때문인지 아니면 간암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물이라도 마실 겸 거실로 나왔을 때 그는 안방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 달도 적자에요. 다음 달이면 영은이 대학도 가야하는데......” 송옹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아들이 준 티켓을 들고 밖을 나섰다. 한참 후에 돌아온 그의 손에는 왕복에서 편도로 바뀐 티켓과 흰 봉투가 들려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그는 아내와 현관을 나서기 전 그의 사랑하는 가족들은 한명씩 품에 안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바라봤다. 마치 그의 눈에 담아가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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