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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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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마이너 무비게이션) 도대체가 말이 안되는 ‘목격자’

2018-08-29 15:08

조회수 : 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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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목격자’는 결과적으로 상업적 성공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영화란 매체의 기본 구성 요소인 개연성 측면에서 상식 밖의 전개가 드러난다. 이른바 정합성, 즉 원인에 따른 과정의 추론을 따져 볼 때 ‘목격자’는 스토리로서의 기본 전제 조건 자체부터가 잘못됐다. ‘제노비스 신드롬’(방관자 효과)을 정면으로 다룬 첫 번째 상업 영화란 측면에서 의미는 분명하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다수가 개인의 위험을 외면하는 방관자 효과에 대한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돼 있다. 이 지점을 ‘목격자’는 파고 들었다. 하지만 파고드는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 결과를 위해 과정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결과에 집중하고 과정을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 쉽게 말해 스토리 전개를 위한 동력에만 집중한다.
 
 
 
‘목격자’는 ‘제노비스 신드롬’에 대한 끔찍함을 말한다.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경고가 이 영화의 메시지이고 주제다. 주인공 한상훈(이성민 분) 역시 이기주의 때문에 어려움에 빠진 인물이다. 태호(곽시양 분)의 살인 현장을 목격했지만 가족을 보호해야 한단 자기 합리화에 빠져 입을 다물게 된다. 방관자는 상훈 뿐만이 아니다. 상훈이 입주한 아파트 자체가 거대한 방관자다. 우리 사회의 보편성을 담은 주거 공간이지만 반대로 그 공간은 개인주의를 상징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으로만 구성된 이 거대 공간은 하나의 목격자이면서도 또 다른 방관자이고 외면자다. 상훈이 입주하던 첫 날 스쳐 지나간 부녀회장 시선은 아파트란 주거 공간이 담고 있는 감정 교류 결여를 은유적으로 끌어 들인 단적인 상징이다. 이 공간 한 복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일상적이지만 반대로 가장 일상적일 수 없는 감정이 배제된 집단 거주 공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이 영화의 주제 ‘제노비스 신드롬’을 제시할 가장 좋은 발단이다. 영화는 여기에서부터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 발단을 만들어 놓고 그 결과를 위한 과정을 추론하기 시작한다.
 
거대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무수한 CCTV의 존재다. 이건 일반론의 개념에서 접근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른바 ‘핍진성’ 결여다. 영화가 공포를 조성하는 요소는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가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풀어내면 ‘목격자’ 속 살인은 쉽게 해결돼야 마땅하다. 단지 내에 설치된 수백 개의 CCTV, 그리고 주차된 차량의 블랙 박스. 주기적으로 순찰을 도는 아파트 경비원, 그리고 새벽 시간 대에도 당연히 이동하는 입주민의 유동 인구. ‘목격자’ 속 살인의 목격자는 결과적으로 상훈 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이미 수백 수천 개의 시선이 그 살인을 목격했다. ‘핍진성’ 외면이다. 완벽한 자기 모순에 빠진 첫 번째 함정이다.
 
영화 '목격자' 스틸. 사진/NEW
 
두 번째는 영화 속에 등장한 또 다른 살인이다. 영화 속에선 두 번째 살인으로 등장한다. 살인이 일어난 시간은 첫 번째 사건과는 정반대인 대낮이다. 영화 속 등장한 아파트는 ‘복도형 아파트’다. 대낮 복도형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의 집에서 일어난다. 피해자의 집 문은 열린 상태다. 그 어떤 목격자도 없다. 유일한 목격자는 또 다시 상훈이다. 정합성의 코드에서 이 역시 설명이 안 되는 지점이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끼워 맞춘 방식이다.
 
세 번째는 주인공 상훈의 선택이다. 그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경찰에 진술을 거부한다. 범인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는 범인에게 ‘난 경찰에 너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을 담보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 받기를 바란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설명하면 논리는 간단하다. 범인은 상훈을 알고 있다. 그의 가족도 알고 있다. 집도 알고 있다. 결국 언제 어느 때라도 상훈의 가족은 위협의 대상이 된다. ‘목격자’ 속 범인은 이른바 ‘쾌락 살인자’다. 언제라도 가족을 위협할 요소를 끌고 가는 상훈의 선택은 일반적인 범주에선 설명이 불가능하다. 일반적이라면 위험은 제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 반대를 상훈에게 강요한다. 이건 다시 한 번 정합성 측면에서 논리가 맞지 않는 지점이다. 결국 다시 한 번 스토리 동력을 위해 과정을 끼워 맞춘 방식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 속 악역인 살인자 태호를 그리는 방식이다. 어떤 영화라도 어떤 스토리에서라도 악역은 분명히 목적성을 띠어야 한다. 아주 작은 발단이라도 목적은 존재해야 다른 주변 인물들의 개연성이 맞물리게 된다. ‘목격자’ 속 살인자 태호는 이 모든 지점이 배제됐다. 그저 ‘방관자 효과’를 위해 끌어 들인 수단에 불과하다.
 
영화 '목격자' 스틸. 사진/NEW
 
결국 ‘목격자’는 ‘제노비스 신드롬’을 위해 거대한 방관자가 필요했다. 그 방관자는 아파트 단지다. 그 안에 살고 있는 각각의 인물은 이기주의에 점령됐다. 그 이기주의를 극대화 하기 위해 충격적 발단이 필요하다. 살인 사건을 끌어 들인다. 살인의 발단은 목적에서 배제된다. 살인자와 목격자의 추격만 남겨 둔다. 선택과 집중이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을 그려낸다. 영화 속 등장한 황당한 결말로 마무리한다.
 
‘목격자’는 이렇듯 그 어떤 잣대를 들이 밀어도 구멍이 뚫린 문제작임에 틀림없다. 스릴러란 장르적 측면에서도 ‘목격자’는 풀어내기 힘든 소재를 끌어 들였다. 이건 선택과 집중의 문제가 아니다. 개연성이란 스토리 구성의 기본 요소가 결여된 가장 큰 지점이다. ‘목격자’가 20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 들인 것은 따지고 보면 공간이 주는 익숙함에 지배된 관람의 착각이 가장 큰 지점일 듯하다. 이 지점을 노렸다면 ‘목격자’는 반대로 가장 영리한 영화일수도 있을 듯하다.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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