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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지

(현장에서)70주년 맞은 사법부, 개혁의지 있나?

2018-09-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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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행사를 앞둔 전날인 지난 12일 저녁, 기자는 행사 장소였던 대법원을 찾았다가 곤혹을 치렀다. 대법원 내 누구나 지나다니는 복도에 서 있었을 뿐인데 보안 담당 직원이 '(복도 중앙에서) 어서 나오라'는 고성을 지른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져 도대체 누가 지나 가기에 이 난리를 피우는 지 궁금해 뒤를 쳐다보니 엘레베이터에서 모 대법관이 막 내려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 대법관은 보안직원의 '교통정리'로 넓고 텅 빈 복도를 지나 유유히 청사를 빠져나갔다. 이후 기자가 직원을 다시 쳐다보자 그 직원은 "일 있느냐"는 말과 함께 기자를 쏘아봤다.   
 
대법관이 지나갈 때 국민들이 길까지 비켜줘야 하는 것일까. '대법관이 지나가실 때'를 대비한 별도의 의전 매뉴얼이 있는지 궁금해 대법원에 문의했지만 그런 매뉴얼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되돌아왔을 뿐이다. 매뉴얼도 없이 자체적으로 '교통정리'를 한 것이 직원의 개별 행동이었다고 해도 그동안 대법원 내에서 공복인 '대법관'과 주권자인 '국민'의 관계를 어떻게 두고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자 대신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이런 부조리는 정당화 될 수 없다. 
 
다음날 대법원에서 있었던 70주년 기념 행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누구나 사법제도를 쉽고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법개혁 의지도 선뜻 공감할 수 없었다.  
 
앞서 대법원은 ‘재판거래’ 의혹이 속속 사실로 확인되자 그동안 상호 협력관계 정립을 위해 일선 법원으로부터 받아 왔던 중요사건 현황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사법개혁의 일환이라고 했다. 이어 일선 법원은 그동안 출입 기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제공했던 중요사건 일정 공지를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하루에 진행되는 재판만도 수천 건이다. 그 중에서 권력층이나 기업의 불법행위 사건 등 국민의 관심이 집중 된 중요사건을 외부인인 언론이 일일이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이는 국민들의 알 권리가 침해되는 상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에게 재판 기회를 확대한다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언론이 재판을 감시할 기회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사법개혁 의지'에 대한 의문과 동시에 '사법농단' 수사 보도를 이어가는 언론에 대한 보복성이 담긴 결정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을 배척하는 대법원 내 풍토가 확고한 데 어떻게 개혁이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문건' 에서도 대법원은 국민을 '이기적 존재'로 폄하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국민을 보는 대법원의 시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법부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사법개혁이 무엇일지 현장부터 살펴야 할 것이다.

최영지 사회부 기자(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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