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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문 대통령 교황방북 성사…새국면 맞이한 '비핵화 로드맵'

7박9일 유럽순방 종료…대북 제재완화 공론화·세일즈 외교도 성과

2018-10-2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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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이탈리아·교황청·벨기에·덴마크 등 7박9일간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21일 오후 귀국했다. 순방기간 문 대통령은 13억 가톨릭(천주교)의 수장으로 범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약속을 이끌어냈다. 유럽연합(EU) 주요국 정상들과 만나 최근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고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현지맞춤형 경제세일즈 외교도 성과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로마 바티칸 교황궁 교황 집무실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교황, 내년 5월 방북 가시화…북미 동시압박 ‘양수겸장’ 카드
 
문 대통령은 18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의사를 전달했다.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북한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반도에서 평화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응원했다.
 
교황청의 문 대통령을 향한 환대에 어느 정도 좋은 성과를 기대했지만, 이처럼 파격적인 메시지가 나올지는 청와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콜롬비아 평화협정 타결 등에 큰 역할을 한 교황이 문 대통령의 ‘평화프로세스’에 전폭적 지지의사를 밝힌 것도 그 의미가 크다.
 
교황 방북이 성사된다면 내년 5월 전후가 유력하다. 일본에선 아키히토 일왕이 내년 4월30일 퇴위하고 다음 날인 5월1일 나루히토 왕세자가 즉위한다. 교황청과 중국의 관계정상화도 현재진행형이다. 외교가에서는 교황이 5월중 남·북·중·일을 순방해 ‘핵무기 철폐 및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교황의 이런 움직임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압박 겸 숙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입장에선 그간 공 들였던 북한 비핵화의 공적이 교황에게 돌아갈 위험성이 있다. 성염 전 교황청 대사는 지난 1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래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큰 숙제를 안았다”며 “서둘러 대북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판을 엎어버리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북한 입장에서 교황 방북은 ‘양날의 검’이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및 정상국가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증해주는 결정적인 장면이 될 수 있지만 체제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교황을 초청하기 위해선 주민들에게 일정부분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등 인권개선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교황과의 약속을 어길 경우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무산될 뿐더러 전 세계의 여론이 극도로 악화될 위험성 역시 감수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코펜하겐 대니쉬 라디오 콘서트홀에서 열린 '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P4G) 정상회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제재완화’ 공론화 및 세일즈외교
 
문 대통령은 교황청 방문 외에 프랑스를 국빈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고, 영국 테리사 메이, 독일 앙겔라 메르켈, 이탈리아 주세페 콘테 총리 등과 정상회담을 했다. 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아셈),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 정상회의 등 2개의 다자회의에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 자리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를 설명하고 특히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그렇지만 마크롱 대통령 등은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에 협력하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제재가 계속돼야할 것”이라며 제재완화의 전제조건으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선행을 강조했다. 미국이 싱가포르 1차 북미회담을 계기로 CVID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ID)로 일종의 톤다운 한 것을 감안하면 유럽의 강경 자세만 재확인된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EU의 기존 입장이 CVID”라고 말했다. 그간 EU가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적극 나선 것이 아니기에 CVID에서 FFID로 입장이 바뀔 계기가 딱히 없었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이번 유럽순방에서 우리의 평화프로세스를 알리고 ‘제재완화’를 비핵화 수단의 하나로 공론화시킨 것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는 것이 내부기류다. 향후 유엔에서 제재완화를 논의할 때 유럽지역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기반을 일정 구축했다는 의미도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세일즈 외교를 이어갔다. 지난 14일 파리에서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의 프랑스 수출 1호차를 직접 시승하고, 수소차 세일즈에 힘을 실었다. 유럽정상들과 만난 자리에선 EU가 미국의 보호무역 대응차원에 발동시킨 철강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에 한국 예외를 요청했다. 영국과는 ‘브렉시트’(Brexit) 이후에도 자유무역협정(FTA) 조치를 유지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서 현대자동차가 수출한 '넥쏘' 수소 전기차를 탑승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청와대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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