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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배 이야기)조선은 ‘첨단기술집약산업’, 노동집약산업은 오해

(2)선박의 특성

2018-10-2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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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대한민국 조선산업을 현대화시킨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현대중공업이 모래사장만 있는 상태에서 초대형 유조선(VLCC)을 주문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은 선박 건조를 경험이 없고 시설조차 없는 상태에서 도면 몇 장 있으면 건조할 수 있는, 어렵지 않은 기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30만톤급 유조선을 중심으로 선박의 특질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주 큰 오산임을 알 수 있다.
 
30만톤급 초대형 유조선 비너스 글로리(300K VLCC Venus Glory, 길이 331m×폭 58m×깊이 31m, 속력 15.1노트(knot), 30만(DWT, Dead Deight Ton, 재화중량톤수))를 예를 들어 살펴보자. 이 선박의 길이는 63빌딩 높이의 1.5배 정도, 폭은 축구장 폭에 비견되고 깊이는 10층 건물에 해당하며, 갑판에는 축구장 3개를 배치할 수 있다. 적재량이 30만톤이므로 이를 유조차에 옮겨 실으면 경부고속도로에 20톤 적재 유조차를 100m 간격으로 배치하여 3개 차선을 유조차로 메울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1974년 6월 28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개최된 애틀랜틱 배런호 명명식. 사진/현대중공업
 
 
1인당 선박 건조량, 경승용차 284대 생산량과 맞먹어
 
조선 산업을 노동 집약형 산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2010년 우리나라의 선박 건조 실적은 2640만GT(총톤수) 정도이며, 조선인력은 13만2700명으로 추산되므로 1인당 연간 선박 건조량은 199GT 정도다. 1.4톤 정도의 경승용차가 선박의 총톤수 기준으로는 0.7GT 정도에 해당하므로 연간 284대 정도의 노동 생산성에 비교될 수 있다. 단순 노동집약 산업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인선 철도 부설 후 100년이 지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철도 레일의 장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선박은 길이 300m 이상인 유조선을 1970년대 초반에 이미 전체를 용접으로 건조하는 기술력을 갖추었다.
 
선박을 옥외에서 남북 방향으로 배치하여 놓고 건조하면, 선박의 오른쪽과 왼쪽의 강철판은 오전과 오후의 온도차에도 신축량이 바뀌므로 선체의 중심선의 굽어짐도 따라서 바뀐다. 하지만 선박의 프로펠러 축은 건조 후 직선 상태여야 하므로 전체 건조와 용접작업은 고도로 정밀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특히 폭이 60m 정도 되는 선박의 외판들이 이음 부분에서 어긋나지 않게 이어지려면 차이가 1mm 이상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선박의 폭을 기준할 경우 6만 분의 1의 오차율에 해당하는 데, 정밀기계 가공에 버금가는 값이다. 이처럼 1000톤 단위의 블록으로 제작하고 선행 의장으로 처리된 모든 부재가 서로 맞아야 하는 정밀도를 고려하면, 결코 단순한 노동력으로 선박을 건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만톤 VLCC의 마라톤 기록은 2시간16분
 
선박은 수상 또는 수중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VLCC를 흔히 ‘저속 비대선’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15노트 이상의 속력으로 설계하고 있다. 그런데 현행 ‘해상교통안전법’에서는 15노트 이상의 속력을 가지는 여객선을 ‘고속 여객선’이라고 한다. 1노트의 속력은 시간당 1852m(1852m/hour) 속력에 해당하므로 10노트의 속력은 2시간16분대의 기록을 보유한 마라톤 선수의 속력에 해당한다. 따라서 유조선의 속력은 결코 느린 것이 아니다.
 
30만톤급 유조선의 신조선 가격은 1억4600만달러(2007년도 말 기준)로서 소형 승용차 1만대의 가격과 비슷한, 막대한 자본이 집약될 때 비로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다. 3만5000마력 정도의 디젤기관으로 추진하며 직경 10m 정도의 추진기가 1.5PRS(초당 회전수, Revolution Per Second) 정도의 속도로 회전하므로 프로펠러의 날개 끝은 초당 약 47m(47m/sec)의 속도로 물을 가르게 된다. 프로펠러에서 발생된 추력은 축을 통하여 선체에 전달되어 선박을 추진하게 된다. 배수량이 40만톤 이상이며 축구장 3개를 갑판에 배치할 수 있는 거대한 부유구조물을 하나의 축으로 밀어 선박을 직선 항로로 민첩하게 달리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외판두께 배 길이의 1만5000분의 1, 계란은 100분의 1
 
선주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는 사업이므로 발주에 앞서서 기존의 유사 선박에 비하여 더욱 높은 수익성을 가질 수 있는 요구 조건을 내세워 발주하고, 선박 설계자는 선박의 수명기간 중 선박의 경제성을 염두에 두고 선박을 설계한다. 선박은 주문생산품이므로 항상 새로운 설계를 제시하는데, 유조선은 배 길이의 1만5000분의 1 정도의 외판 두께로 가볍게 설계해 선체 중량을 경감시키고 있다. 계란의 껍데기 두께가 최대 치수의 100분의 1 정도인 점을 생각한다면 선박의 외판 치수가 얼마나 얇은 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즉, 극단적인 조건에서 구조를 설계하면서도 20~30년에 이르는 수명기간 중 거친 해상에서 운항하더라도 안전하고 기능이 저하되지 않아야 하므로 고도의 설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박이 길이방향으로 흔들리는 종동요, 즉 ‘피칭(pitching)’을 일으키면 선수 또는 선미부에 놓인 부재와 의장품들은 끊임없이 튀어 오르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운동 각속도가 초당 1도 정도의 작은 각속도를 가질 때도 길이 320m의 선박이라면 파도 표면과의 상대운동 속도가 초당 6m 정도에 이른다. 이는 1.8m 정도의 높이에서 물체를 자유낙하시킨 것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육상에 설치되는 기기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하중이 작용하는 상태로 긴 기간 동안 연속 운전하더라도 성능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동차는 시험용 차량으로 장기간의 내구도 실험을 거쳐 출시하는 데도 20년의 수명을 보장하기 어려운 것에 비하면, 시험도 하지 않고 20~30년의 수명을 보장해야 하는 선박 건조의 어려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선박에 수많은 자동화기기를 채택하면서 선원 수는 큰 폭으로 줄어들었으나 운항 시간은 큰 변화가 없다. 이는 장기간 소수의 선원들이 교대근무로 선박을 운항하게 된다는 뜻이다. 근무시간 중 선원 간 접촉 기회도 많지 않으므로 선원들의 심리적 안정은 물론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거주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또한 선원들이 작업하는 데 피로하지 않도록 선체운동이나 진동 및 소음의 수준도 적정해야 한다. 특히 크루즈선(Cruise ship)인 경우에는 대양 항해에 익숙지 못한 승객이 대거 탑승하기 때문에 편의성과 안락성이 더욱 우수해야 하며 아울러 관광 및 오락성도 겸비되어야 한다.
 
선체는 파랑을 헤치고 운항하므로 파도와 바람에 의해 선체운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폭방향으로 흔들리는 ‘횡동요(rolling)’에 대한 충분한 복원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또한 거친 파랑 중을 항행하다가 길이 방향으로 크게 동요하게 되어 선저가 수면 상으로 올라와서 떨어지면서 수면과의 충돌로 인해 선수 선저의 평평한 부분에 충격 작용하는 현상인 ‘슬래밍(slamming)’이나 거친 해상에서 선박의 갑판에 해수가 다량 유입되는 ‘갑판침수(Green water)’ 등의 현상에도 대비해야 한다. 만재 상태에서는 배수량이 50만톤에 가까운 선박이 번잡한 항로에서 다른 선박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안전하게 운항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상과 해상 상태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항로에서 정시 운항을 할 수 있어야만 해운업자가 안심하고 사업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한국, 세계 어느 곳에 통용되는 선박 건조
 
지난 2010년 한국은 376척의 선박을 건조해 361척을 해외로 수출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금액으로는 491억달러를 수출해 수출 기여도가 10.5%에 달했다. 한국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우수한 선박을 공급하고 있다. 실제로 선박은 국제무역에 종사함으로써 국제 항로에 취항하여 타국의 항구에 입항하게 된다. 따라서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국제선급연합회(IACS) 및 선급의 각종 규정에 적합한 선박이어야 한다.
 
선박은 그 소속된 국가의 국적을 취득해야 하며, 그 나라의 국기를 게양하고 외국 항구에 입항하여도 본국의 영토로 인정받는다. 지난 2011년 1월21일 대한민국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삼호해운 소속 삼호주얼리호(Samho Jewelry)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 해군은 소말리아 납치범들을 체포해 한국으로 이송, 국내에서 재판을 했다. 이는 대한만국 국적 선박이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자료: ‘조선기술’, 대한조선학회,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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