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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

'핫이슈' 김태우와 박형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아주 나중에~~ 영화 시나리오 만들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2018-12-20 17:36

조회수 : 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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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 특별감찰반 논란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특별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전직 특감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의 ‘말’을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자유한국당은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청와대 역시 별다른 물증은 없이 ‘기억’에 의존해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은 상이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누가 옳은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끝없는 소모전이 이어지고 있다. 물증은 없다. 그럼 사건 주요 인물들을 보는 것은 어떨까? 김태우 수사관과 그의 상사였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그간 나온 기사들과 이것저것 얻어 들은 에피소드들을 기반으로 잠깐 풀어보겠다.
 
1. 김태우 수사관은 누구인가?
 
(토마토칼럼)'민정 1기', 박수칠 때 떠나라
 
올해 43세인 김태우 수사관은 지방출신으로, 1975년 혹은 76년 출생으로 추측된다. 28세에 검찰 9급과 7급 공무원시험에 동시 합격했고, 2003년 창원지검 공안부에서 검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능력을 인정받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로 영전했고 이때부터 탄탄대로를 달렸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08년도 '삼성비자금 특검' 수사관으로 활약하다가 특검이 끝난 뒤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공적자금반으로 옮겼다. 그 뒤 서울중앙지검 금조3부에서 공무를 봤다.

이명박정부 막바지, 대선이 있던 2012년 2월 청와대 특감반에 합류했다. 정권이 바뀌고 검찰에 일시 복귀했다가 다시 박근혜정부 특감반에서 2014년 후반기까지 활약했으나,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이 들어오면서 교체됐다. 정권이 바뀌고 문재인정부가 들어섰지만, 김태우 수사관은 2017년 7월 다시 청와대에 들어오게 된다.
 
김 수사관의 지인은 그를 ‘착하고 성실하다’고 표현했다. 자기고집도 있는 ‘첩보전문가’라는 평가다. 공직생활 15년 만에 9급에서 시작해 6급 주사의 자리에 올랐다. 5급 사무관 승진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 예정대로 내년 1월 검찰에 복귀했다면 유력한 승진후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운명이 뒤틀린 것은 지난 11월초다. 갑작스레 그는 ‘비위혐의’로 검찰에 원대복귀하게 됐다.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김 수사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 비위를 제보 받아 지난 4~5월 유영민 과기부 장관을 수차례 독대한 후 7월 과기부 감사관실 개방직 5급 자리를 만들게 하고, 거기에 ‘셀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동료들과 함께 골프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있다.
 
김 수사관의 주장은 다르다. 자신이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등 여권 관계자와 관련한 비위 의혹 첩보를 상부에 보고한 것 때문에 부당하게 징계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우 대사 관련 첩보는 2017년 9월 이뤄진 내용이라 1년도 지난 보고로 징계를 받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조금 떨어지는 듯하다. 이후 상황은 언론에 나오는 대로다. 김 수사관은 연일 조선, 중앙, 동아 등 소위 메이저 언론들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청와대는 강력 부인중이다.
 
2.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누구인가?
 
올해 51세인 박 비서관은 1968년 서울 출생이다. 그와 사석에서 만나본 한 기자는 그를 ‘교회오빠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보헤미안(자유인)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 그의 연락처를 등록하자 나온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조리복을 차려입고 진지하게 요리하는 남자’를 보고 연락처를 잘못 받은 줄 알았다.
 
'50대'인 박 비서관의 노래방 18번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다. 무려 서태지 팬클럽 부회장 출신이라고 한다. 또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선수를 꿈꿨지만, 공부를 너무 잘해서(...) 야구를 포기당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검사가 됐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결국 검찰 내 사회인 야구팀을 만들어 오랜 꿈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박 비서관은 1993년 26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검사를 시작으로 지방 검찰청들을 돌았고, 2011년 대검찰청 공안2과장을 다는 등 순탄한 인생을 보냈다. 내부에선 ‘면도날 수사’로 불리며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운명이 꼬인 것은 2012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때부터다. 당시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와 함께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지만, 이후 정권의 미운털이 박혔고, 이후 좌천성 인사로 지방을 떠돌다 결국 2016년 검찰에서 나와 변호사가 됐다.
 
박 비서관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2017년 5월 문재인정부의 초대 반부패비서관으로 임명되면서다. 청와대 측은 “조사능력과 반부패 소신이 검증된 인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당시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보여줬다”며 “어떤 타협도 없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집행할 최적의 인물”이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이후 언론의 시야에서 사라져 조용히 민정수석실 업무를 담당했던 그가 19일 청와대 정론관에 섰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
 
박형철 "김태우 '첩보 보고서', 윗 지시 없이 본인이 알아서 만든 것"

출처/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페이스북
출처/박형철 비서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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