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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줄 알고 간음했는데 '멀쩡'…대법 "준강간죄 미수 인정" 첫 판결

2019-03-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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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피해여성이 만취해 항거 불능상태인 줄 알고 성관계를 했지만 실제로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면,  준강간죄의 미수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8일 강간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강간죄와 준강간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대신 준강간죄 미수를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먼저 "준강간죄는 정신적·신체적 사정으로 해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한다"면서 "행위 대상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또 "불능미수는 처음부터 기수가 될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배제되지만  범죄 실행에 착수할 당시 실행행위를 놓고 판단했을 때 행위자가 의도한 범죄의 기수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는 장애미수 또는 중지미수와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행위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준강간죄의 기수에 이를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는 경우로서 준강간죄의 미수범이 성립하고, 이 경우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면 불능미수가 성립한다"면서 "같은 취지로 판단한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3명은 "준강간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간음으로 인해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다"면서 "이와 달리 준강간죄의 미수범으로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며 파기환송을 주장했다.
 
현직 군인인 A씨는 2017년 4월 자신의 집에서 처와 피해여성 B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처가 먼저 잠든 뒤 피해여성이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자 따라들어갔다. B씨가 만취해 몸을 못 가누는 것으로 생각한 A씨는 그 기회를 이용해 A씨를 간음했지만, 사실 B씨는 항거불능 정도로 취한 상태가 아니었고, 결국 A씨는 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군 검찰은 A씨의 죄로 강간죄와 함께 준강간죄를 예비적으로 추가해 기소했다. 1심인 보통군사법원은 A씨가 폭행 또는 협박을 사용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강간죄는 무죄로 판단했지만, 준강간죄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B씨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면서 항소했지만 군검찰이 다시 준강간 미수죄를 예비적으로 추가했고.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준강간 미수죄를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2년과 '5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다시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상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는 준유사강간죄의 불능미수는 성립할 수 있다고 판결해왔지만, 이의 연장선상에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성립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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