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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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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장산곶매’를 아시나요

2019-04-01 18:03

조회수 :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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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태생입니다. 운동권이란 단어와는 사실 거리가 멀어도 아주 먼 세대입니다. 나이차이가 꽤 많이 나는 저의 친 누님과 형님들이 딱 저 운동권 세대입니다. 실제로 저의 큰 누님은 과거 여성 운동권 단체에서 일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반면 구순에 가까운 아버지는 그 시절 아버지 세대 그대로입니다. 군사 정권 시절의 서슬 퍼런 집권을 서민들의 생활 안정이란 명분으로 지지하셨습니다. 집안에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아버지와 큰 누나의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전 그 시절 운동이란 단어가 유치원에서 봄 가을이면 하는 운동회의 운동인줄 알았습니다. 당시 유치원생이던 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아빠는 운동을 정말 싫어하는 구나.”
 
대학 시절은 무난했습니다. 조금은 특별한 대학을 다녔기에 그 시절에도 운동과는 무관했습니다. 고교 시절 친구들 가운데 일부는 상당히 과격한(저희 세대에서 나름의) 운동권 이기도 했습니다. 술자리에서 저의 무관심에 노동자의 외침기득권 세력의 불합리성을 일장 연설하면서 절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아마 기억으론 그 시절이었습니다. 관심이라기 보단 어떤 흥미가 생겼습니다. 저희 큰 누님과 형님 방에서 언뜻 본 기억이 났습니다. ‘장산곶매란 영화집단. 1990년대 후반 한국 상업 영화계를 주름 잡은 영화인들의 산실이 된 곳입니다. 일종의 영화 동아리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포털사이트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으니 굳이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 집단의 영화 ! 꿈의 나라그리고 파업전야’, 한국 노동 영화의 전설로 불리는 두 작품입니다. 국내 스크린 상영 없이 해적판 상영으로 당시 무려 30만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산입니다. 일부에선 100만이 넘는 관객들이 본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1000만이 훌쩍 넘는 수치입니다.
 
대학 시청각자료실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지금과는 다른 필름의 거친 질감 그리고 낯선 배우들의 연기. 영화란 매체의 기본 선입견인 기승전결의 스토리라인이라기 보단 어떤 사건을 두고 그 사건 자체에 오롯이 집중한 일종의 리얼리즘 형식의 비주얼이 기억에 납니다. 정확하게는 언제인지 기억이 없지만 21년 전 본 기억이 납니다. 군입대 전 학교에서 관람을 했습니다. ‘재미있다’ ‘재미없다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게 정말 영화라고?”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은 또렷합니다. 디지털이 영화 상영의 기본이 된 지금과 달리 1990년대에는 필름이 주축이었습니다. 필름의 질감이 주는 현실성과 관점의 주관성이 더욱 도드라져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 꿈의 나라’ ‘파업전야두 편은 저에겐 무소불위의 현실적 타격감을 안겨줬던 영화입니다.
 
기억 속에서 아련합니다. 이 영화가 당시 왜 극장에서 상영이 불가능했는지. ‘장산곶매에 소속된 영화인들이 왜 공권력에 탄압을 받았는지는 그들의 영화를 보면 완벽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대표작이기도 한 파업전야가 최근 디지털4K 리마스터링(쉽게 말하면 화질을 깨끗하게 하는 작업) 버전으로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장산곶매의 일원이던 이은 명필름 대표가 큰 힘을 쏟은 것 같습니다. 국내 노동 영화의 전설로 불린 이 작품을 꼭 한 번 보시길 권유합니다.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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