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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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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호 기자입니다.
(홍콩시위)홍콩공항까지 1시간을 걸어간 이유

2019-09-03 10:36

조회수 : 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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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위 취재 이틀째인 9월1일. 이날 일정은 민간인권진선(民間人權陣線, 이하 민진)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날은 오전 8시를 넘겨 잠에서 깼다. 전날엔 저녁 11시쯤 잠들었지만, 홍콩의 습한 날씨와 도보행진 덕에 쉽게 피곤해서인지 늦잠을 잤다. 9시30분 임채원 교수와 호텔을 나서 민진을 만날 장소로 출발했다. 호텔은 코즈웨이 베이역 부근에 있었고, 민진을 만나는 장소는 샤텐역이었다. 홍콩 왔으니 홍콩 택시를 타자는 임 교수의 제안에 홍콩 택시를 타고 30여분 달려 샤텐역에 도착했다.



샤텐역에 가서 보니 민진을 만나기로 한 장소는 패스트푸드 가게인 맥도날드였다. 맥도날드에서 한국의 촛불혁명과 홍콩시위 연대에 관한 미팅을 한다는 게 이색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콩 맥도날드에서 본 신기한 광경은 햄버거 등을 주문한 뒤 다 먹고 나면 그걸 치우고 테이블을 정리해주는 직원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민진을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은 오전 10시30분이었다. 만날 사람은 어제 홍콩에 와서 처음으로 인사했던 민진의 부대표 웡윅모(黃奕武, 사진 왼쪽)씨였다. 그는 좀 늦게 나타났는데, 우리 일행은 웡에게 맥도날드가 시끄러워 미팅이나 인터뷰가 잘 안 될 것 같으니 조용한 자리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조용한 카페 등에 가겠거니 생각했는데 웡이 이번에 이끈 곳은 옆 건물의 브런치 가게였다. 맥도날드에 비해선 조용했지만 여기도 사람들이 조금씩 모이자 시끄러워지긴 마찬가지였다.



임 교수는 웡을 만나 한국 촛불혁명과 홍콩시위에 관한 연대 등을 논의했고, 이어서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 언론이 웡을 만나 인터뷰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웡과 나눈 30여분간의 인터뷰 내용은 따로 소개하겠다. 웡의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홍콩시위가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Hongkong is Hongkong"이라고 대답한 점이다. 홍콩은 중국 공산당의 뜻대로만 하는 곳이 아니라 홍콩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가진 홍콩 그 자체라는 설명이다.  

이날 웡과 만난 것에 관해 이야기를 더 하자면, 애초에 민진을 이끄는 지미 샴(jimmy sham, 岑文杰)과의 미팅이 예정됐다. 웡도 우리에게 그를 소개해주려고 노력했다. 샴이 영어를 못하고 중국어, 그것도 광둥어만 할 줄 안다고 해서 급하게 홍콩 현지에서 광둥어 통역을 수소문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끝내 샴과의 만남을 불발됐다. 홍콩 당국이 시위에 대해 엄중하게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샴이 신변의 위협을 생각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그는 지난 8월29일 괴한 두 명으로부터 백색테러를 당한 바 있다.

웡씨와 헤어진 후 우리는 홍콩성시대학이 있는 까오룽통으로 갔다. 임 교수의 연구활동 중엔 2016년 촛불혁명 당시 해외에서 우리 교민이 해외에서 진행한 촛불집회 사례를 수집하는 게 있었다. 마침 당시엔 홍콩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그때 집회를 주관한 한국 유학생을 이곳 까오룽통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주인공은 2015년부터 홍콩에서 유학 중인 신진영씨다. 신씨를 통해 2016년 말 홍콩에서 벌어진 촛불집회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홍콩에서도 촛불집회 개최 여부와 정치적 성향을 놓고 한인 유학생들이 갈등했고, 대선에 즈음해서는 문재인 후보 지지를 놓고 이른바 친문과 반문으로 나뉘어 교민사회가 이합집산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줬다. 아울러 그는 홍콩에선 중국이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본토에서 삼합회를 파견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설명했다.

신씨와 만나 점심을 먹고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에 가까워졌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후 5시30분이었기 때문에 이제 정리를 하고 가려는 데 신씨가 더 서둘러야 한다고 주의를 시켰다. 홍콩시위대가 홍콩공항으로 가는 길을 점거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있어서다. 까오룽통에서 홍콩공항으로 가는 지하철 노선을 보니 2번 정도 환승하고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신씨의 걱정을 깊이 새겨듣지 않았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출발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의 계획은 까오룽통에서 센트럴역까지 간 다음 그곳에서 홍콩공항까지 연결된 고속철도를 타는 것이었다. 전날 홍콩에 처음 도착해 공항에서 코즈웨이 베이역까지 가는 길도 이 방법이었고, 그때는 40여분 정도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우리 일행은 안심하고 있었다. 문제는 지하철을 타고 가는 중에 홍콩시위대가 고속철도를 점거해서 공항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뉴스가 전해진 것이다.

이거 어떡하나 걱정하던 차에 마침 같은 지하철을 타고 있던 파일럿을 발견했다. 옳다구나, 저 파일럿을 따라가면 공항까지 가는 방법이 나오겠구나 생각했다. 파일럿이 공항에서 약 4.8㎞ 정도 떨어진 퉁청역까지 가길래 우리도 그를 따라갔다. 퉁청역에 내린 시간은 오후 3시40분. 막상 역을 나가보니 역 앞 광장엔 전날 목격한 검은색 옷에 마스크를 쓴 홍콩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여기선 지하철로는 공항으로 못 가고 버스나 택시로 가야 하는데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홍콩 시민들은 평소 우버를 통해 택시를 예약하고 있었는데 퉁청역에서 공항으로 가려는 숫자에 비해 택시가 턱없이 모자랐다. 비행기 이륙시간까지 2시간 정도 남았는데 공항에 들어가서 탑승 수속을 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실제 남은 시간은 한시간 남짓이었다. 이곳엔 우리 일행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넘쳤다.



마음이 촉박해서 잠시 정신이 없었는데 임 교수가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구글맵에서 퉁청역에서 홍콩공항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보니 1시간 정도였다. 임 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 당시 군경을 피해 두 발로 뛰며 도망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런 상황에서 믿을 건 '두 다리'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우리는 공항을 향해 속보로 가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 장관이 벌어졌다. 우리가 걸어가듯 홍콩시위대도 홍콩공항을 점거하기 위해 줄을 지어 공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과 시위대는 이내 뒤섞였다. 아울러 시위대가 진군하는 방향과 역행에서 움직이는 무리도 있었다. 공항에서 퉁청역으로 건너오는 사람들이다. 공항에 내렸지만 홍콩으로 들어가는 고속철도가 막힌 바람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퉁청역에서 공항으로 가려면 다리를 하나 지나야 하는데 다리 왼편에선 시위대가 공항을 향해 들어가고, 반대편에선 퉁청역으로 탈출하려는 무리가 대조를 이뤘다. 



가는 도중에 봤더니 만약 우리 일행이 퉁청역에서 공항까지 걸어가는 걸 택하지 않고 택시나 버스를 기다려 그걸 타고 갔다면 오히려 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 뻔했다. 시위대가 진군하면서 도로를 막아서자 퉁청역과 공항을 오고 가는 차들도 속절없이 도로에 발이 묶인 탓이다. 비행시간을 맞추고자 아예 차에서 내려 우리와 함께 홍콩공항 쪽으로 걸어가는 승무원의 모습까지 보였다. 비폭력 민주화운동의 새 모델을 발견한 임 교수는 흥분했다. 바삐 걸음을 재촉하기보다 연신 "이런 역사적 현장에 와 있는 겁니다"를 연발하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시위대는 퉁청역에서 공항 입구까지 빽빽하게 들어섰다. 시위대를 피해서 빠른 걸음으로 가려고 하다 보니 갓길로 빠지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걸어간 덕분에 1시간여 만에 간신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선 어제 봤던 'Chinazi' 낙서가 또 있었다. 지금 홍콩 시민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치 독일의 히틀러를 동급으로 여기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해 3월 '국가주석 3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는데, 홍콩에선 그를 역사적인 독재자로 취급하는 셈이다. 그러자 홍콩에선 중국정부를 나치에 빗대 '중국(China)'과 '나치즘'이라는 단어를 합성한 'Chinazism', 'Chinazi'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여기도 사태가 심각했다. 시위대가 공항까지 점거할까 우려한 공항 측에서 입구를 봉쇄한 것이다. 홍콩공항으로 들어갈 입구를 찾으려는 건 다른 여행객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숨을 헐떡이며 미로를 찾든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했다. 겨우 공항으로 들어갈 문을 발견했는데, 공항 측에선 여권과 항공표 발권내역을 확인하고서야 공항에 입장시켜 줬다. 공항에 들어서자 또 하나의 아수라장이 보였다. 공항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고속철도는 시위대에 의해 막혔으나 그렇다고 퉁청역까지 걸어갈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은 공항에서 무작정 줄은 선 것이다. 그런 행렬이 홍콩공항 1층 한켠을 가득 메웠다. 출구가 막혀 인산인해를 이룬 홍콩공항을 뒤로한 채 우리 일행은 홍콩을 떠났다.
  • 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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