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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구하라 사망 4시간 전 올라온 악랄한 기사

2019-11-25 16:34

조회수 :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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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한류를 이끌던 스타 한 명이 또 다시 세상을 등졌다. 고 설리 이후 42일 만이다. 생전 함께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었을까. 설리의 49재가 오기도 전에 구하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제의 그 날을. 평소 절친하게 지냈던 홍보사 팀장의 부탁을 받고 취재를 위해 외출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늘 그렇듯 포털사이트 메인을 훑어보다 이런 제목을 봤다. <"잘자"…구하라, 민낯 침대 셀카로 전한 근황>.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남들에게 뽐낼 정도로 기자생활을 오래한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초짜'에 가깝다. 하지만 대한민국 인터넷과 SNS 파급력이 얼마나 센 지 정도는 알고 있다. 3살짜리 아이도 밥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는 시대니까. 나는 그 기사의 용도가 무엇인지 투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인권따위는 신경쓰지 않은, 조회수 용 기사였다.
 
많은 매체들이 조회수에 목을 맨다. 그것도 매우 절실하게. 특정 매체는 연예인들의 SNS를 알람 설정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SNS에 게시물이 올라오면, 10분도 되지 않아 수십 매체 기사들이 우후죽순 올라온다. 유명한 연예인일수록, 소위 말하는 '씹을 거리'가 많은 연예인일수록 이 파급력은 크다.
 
 
일반인이 보기엔 평범하지만, 이 세계의 순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기사의 의도가 뭔지 어림짐작할 것이다. 기자는 네티즌들에게 '씹을 거리'를 줬다. 한국에서 활동하지도 않는 그를 한국 포털사이트라는 도마에 올렸다. 기사를 쓰지 않았다면, 악플러들은 몰랐을 TMI(Too Much Information)다.
 
당시 댓글은 가관이다. "민낯으로 사진 찍고 어플로 보정했을 거다", "얘 얼굴만 보면 ET가 생각난다", "요상하게 생겼다", "누워서 돈 번다는 게 이런 거구나", "전 얼굴이 낫다" 등의 악플이 달렸다. 당사자가 아님에도 기분이 불쾌해지는 말들이다.
 
구하라 인스타그램.
 
기사를 보면서 불쾌한 점이 또 있었다. "잘자"라는 구하라의 의미심장한 멘트 때문이었다. 5월 12일 구하라는 인스타그램에 같은 멘트를 올린 적 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2주 후, 그는 집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다행히 매니저가 빨리 발견했고,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 이후 구하라의 팬들은 항상 SNS에 걱정 어린 글을 남겼다. "오늘은 잘 지냈냐", "내일도 행복한 하루가 되라"며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구하라 인스타그램.
 
구하라는 팬들의 응원에 화답하듯, 6월 17일 다시 글을 남겼다. "미안하고 고맙다. 더 열심히 극복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며 미소 짓는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더 많은 위로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구하라는 피해자다. 그것도 여성으로서 매우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피해자다. 온몸에 상처를 달고 법원 앞에 나타났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한 것은 자신이지만, 가해자 앞에 "살려달라"며 무릎꿇은 모습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플러들은 냉정했다. 상처입은 마음이 아물기도 전에 그 자리에 돌을 던지고, 또 던졌다. 흉터라도 생기면 좋으련만, 그는 항상 피투성이였다.
 
구하라.
 
구하라는 설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SNS 라이브로 짤막한 영상을 남겼다. "그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잘 지내.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라며 엉엉 울던 모습. 그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친한 친구를 잃은 상실감에 무너진 한 사람의 얼굴. 그는 짧은 인생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잃었을까. 문득 한 연예계 관계자의 말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데뷔할수록, 사람을 좋아할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배신을 많이 당한다. 그래서 마음에 병이 많다"는 말. 이 말도 구하라에게 어느 정도 적용되는 것 같다.
 
물론 선택은 구하라의 몫이었다. 기사 또한 타이밍의 문제였을 수 있다. 기자가 "잘자"의 사건 자체를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우리나라의 윤리의식은 여전히 바닥이라는 걸 깨달았다. 연예인이, 그것도 젊은 여성 아이돌이 민낯으로 찍은 셀카를 기사로 올린다는 것. 심지어 이틀 전에 게시된 SNS를 하필 그날 올린 것. 나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참혹하게 느껴진다.
 
구하라의 전성기 시절이 떠오른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상큼발랄한 매력을 뽐내며 순식간에 수많은 팬들을 만들었던 구하라. 해외를 오가며 한국을 알리고,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서의 행보도 보였던 구하라. "나와 같은 피해자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며 법정에 선 구하라. 그렇게 용감하던 그가 극단적 선택을 내린 게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일까?
 
구하라-설리. 구하라 인스타그램
 
2019년 가을. 유난히 내 직업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시기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짜 시절, 뭣도 모르고 연예인들의 SNS 기사를 자극적으로 써내려가며 조회수가 잘 나오면 '안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던 이기적인 시절이 있었다.
 
물론 현재의 내가 180도 도덕적인 언론인이 되었다고는 확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쓴 기사의 어떤 부분이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고,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 전달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다고 예전의 나로 다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돈을 줘도 거절하겠다'고 답하겠다. 아무것도 모르던 예전보다는, 불편하지만 답을 찾아가는 이 순간이 훨씬 유의미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혼자 쓸쓸하게 삶을 포기한 고 구하라 씨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사과의 뜻도 함께 보낸다. 나도 기억나지 않은 어느 과거의 내가 그에게 알게 모르게 돌을 던졌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연예인은 연예인이라는 종족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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