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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법무부 '뒷북 감찰' 실효성 논란

추미애, 87일 만에 감찰 지시…'윤석열과 힘겨루기'로 시간만 보내

2020-06-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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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결국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해 직접 칼을 빼 든 것은 검찰과의 힘겨루기 양상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을 보낸 뒤 검찰 수사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감찰은 강제수사권이 없는 데다가 87일이 지난 시점에서 증거가 대부분 오염됐거나 멸실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25일 의혹 핵심 당사자인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검사장)을 직무배제하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조치하면서 "해당 검사의 비위와 관련해 법무부에서 직접 감찰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 열린 '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혁신포럼'에 참석해 초선 의원들을 상대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건 발발 때부터 직접감찰 했어야
 
지난 3월31일 MBC에서 이번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법무부의 직접 감찰은 예정돼 있었다. 사안 자체가 '검찰의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여 법무부장관이 감찰을 명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감찰사건'에 꼭 맞는 사건이었다. 법무부도 오늘 직접 감찰에 대한 근거로 이 내용을 담은 법무부 감찰규정 5조의 2, 3호 가목을 들었다.
 
그러나 추 장관은 머뭇거렸다. 대신 대검찰청 감찰부가 움직였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지난 4월7일 휴가 중인 윤 총장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를 통해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해 '감찰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윤 총장은 지휘계통상 참모를 통해 '녹음파일, 녹취록 전문 등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이 먼저'라며 반대했다. 두 사람의 이견은 결국 대검 감찰의 절차적 정당성 문제로 번져 검찰총장과 감찰부장간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참다 못한 시민단체 나서
 
참다 못한 시민단체가 나섰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4월7일 '검언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채널A 이동재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을 협박 혐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당시 민언련은 한 검사장을 지목하는 대신 '성명불상의 검사'로 지칭했다.
 
윤 총장은 이 사건을 대검 인권부로 보내 조사하도록 지시하면서 '제식구 감싸기' 비판을 스스로 불러들였다. 인권부는 MBC와 채널A 측의 협조를 얻느라 또 시간을 보냈다. 
 
21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윤 총장에 대한 사퇴설까지 나왔다. 열린민주당 황희석 당시 후보는 같은 달 8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윤 총장)휴가 복귀 날 사표 제출'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로써 윤 총장에 대한 정치권발 사퇴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윤석열도 뒷북 수사로 자충수
 
윤 총장이 '검언 유착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를 지시한 것은 그로부터 열흘 쯤 뒤였다. 대검은 4월 17일 "윤 총장이 대검 인권부장으로부터 채널A 취재와 MBC 보도 관련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중간 결과를 보고받고 서울남부지검에 접수된 명예훼손 고소 사건을 채널A 관련 고발사건이 접수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언론사 관계자, 불상의 검찰관계자의 인권 침해와 위법 행위 유무를 심도있게 조사하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엄정 대처'이지만 행간을 보면 감찰보다 종국적인 수사를 지시하면서 감찰 착수의 정당성을 흔든 것이다. 여기에는 대검 감찰은 물론 법무부의 감찰도 포함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수사관련 '사족 지시'로 구설수
 
윤 총장은 그러나 '검언유착' 사건 수사와 관련해 MBC에 대한 압수수색을 사실상 독려하면서 또 다시 자충수를 뒀다. 대검은 지난 4월29일 "윤 총장이 오늘 채널A와 MBC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서, 집행 상황을 파악한 뒤, (앞서)'채널A - MBC 관련 의혹 사건'에 관해 서울중앙지검에 수사 지시를 내리면서 언급한 제반 이슈에 대해 빠짐없이 균형 있게 조사할 것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대검은 또 "비례 원칙과 형평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윤 총장이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야권에서는 채널A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의혹 발발 두달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검언 유착 의혹'에 대한 사실적 윤곽이 나온 것은 채널A가 발표한 진상조사에서였다. 채널A는 지난 5월25일 발표한 진상보고서에서 '검언유착 의혹'이 제기된 자사 법조팀 이 모 기자의 '신라젠 취재 건'과 관련해, 주요 쟁점 상당 부분이 이 기자가 조작한 것이라고 결론냈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장과 이 기자가 '신라젠 취재 건'과 관련해 나눈 대화내용은 사실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후 검찰 수사도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됐다.
 
추-윤, 대통령 당부도 소용 없어
 
이 때까지도 법무부는 이번 사건에 대한 방향이나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언론이 죄수 증인들을 통해 제기한 '한명숙 전 총리 공판 위증교사 의혹'을 기반으로 '검찰 때리기'에만 집중했다. '검언 의혹' 사건 초기 '대검 감찰부-윤 총장-추 장관'으로 이어지는 '말싸움'만 반복됐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협업을 당부했지만 소용이 없는 형국이다. 추 장관은 전날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제57회 법의 날 유공자에 대한 정부포상 전수식' 축사에서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오히려 위임받은 것을 각종 예규 또는 각종 규칙 통해서 위임의 취지에 반하도록 자기 편의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법 기술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 어제오늘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권한을 위임 받은자'가 윤 총장임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피의자·피해자도 '소용돌이' 뛰어들어
 
핵심 피의자와 피해자 신분인 관련자들도 이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채널A 이 기자가 기소가 임박하자 전문수사단 심의를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도 이날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윤 총장은 이런 상황에서 직권으로 이 기자의 전문수사단 심의 신청을 받아 들여 또 다시 구설에 올랐다. 이번에는 '제식구 감싸기'가 아닌 '제식구만 감싸기' 논란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볼멘 소리가 나온다. 서울지역 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는 "총장이 검사장을 아낀다면, 아낀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한 검사장 본인이 결백하다고 하다고 하지 않느냐?"고 했다.
 
법무부가 '검언 유착 의혹'으로 감찰을 결정한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장)이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시절이던 지난 1월10일 오후 경기 과천 법무부청사로 보직변경 신고를 위해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 내부는 충격에 휩싸였지만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한 검찰 간부는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김웅 미래통합당 의원의 글을 보라고 했다. 검찰 출신으로 21대 국회의원이 된 김 의원은 이날 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진회가 날뛰는 남송시대도 아니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쫓겨나는 지금이 과연 현실인지 공포감을 느낍니다. 이제는 TV에서도 사라진 막장드라마를 찍고 있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드라마와 달리 이 막장현실은 훗날 반드시 직권남용죄로 단죄받을 것이라고" 했다.
 
수사는 계속, 감찰 징계는 별도
 
서울중앙지검에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만큼 법무부의 감찰은 한 검사장의 직무상 비위에만 초점을 둘 수 있다. 법무부가 감찰에 나섰다고 해서 수사가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더라도 감찰 결과가 다를 경우 한 검사장은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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