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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찬

박원순, 변호사·시민운동가 …최장수 서울시장에 차기 대권주자까지

2020-07-1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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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10일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최장 기간 서울시장이자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이었다. 여성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박 시장은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도입했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 있는 한 농가에서 7남매 중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경기고에 입학했다. 재수 끝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합격한 박 시장은 입학 3개월 만인 1975년 5월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돼 4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학교에서 제적됐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22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대구지검 검사로 재직했으나,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사표를 썼다는 게 박 시장의 설명이다. 
 
박 시장은 1986년 고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변호인단에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특히 그는 1993년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으로 주목받았다. 직장 내 성희롱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최초로 갖도록 한 이 사건은 6년의 법정 공방 끝에 1998년 서울고법에서 승소하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1994년에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면서 박 시장은 시민운동에 첫 발을 내딛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약하면서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 '국회의원 낙선운동', '1인 시위' 등을 벌이며 정치권과 사회에 새로운 개혁 방안을 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시민운동을 우리사회에 정착시킨 박 시장은 2000년부터 '기부·나눔·참여'에 관심을 두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0년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가게도 열었다. 2006년부터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직했다. 희망제작소는 공공기관에 시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관협치 기관으로 평가받는다. 
 
박 시장은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화려하게 정치계에 들어왔다. 인권 변호사 출신의 진보 시민운동가였던 박 시장이 정치인으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그는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사퇴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사상 처음으로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으로 대중 정치의 영역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양보로 단일화되면서 당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장이 된 박 시장은 재선에 당선된 이후에도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도시재생 등 자신이 꿈꿨던 수많은 사회혁신 정책을 하나 둘씩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박 시장은 특히 여성 인권 향상에 공을 들여왔다. 시장 취임 후 서울시에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했으며 2017년 1월 신년회에서는 “1조원을 투입해 32만개의 여성 일자리를 만들겠다. 여성 중심, 노동 중심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5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성폭력은) 사후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기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며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2018년 3월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에 대한 ‘미투’ 폭로 등으로 미투 운동이 절정에 이를 때에는 "하나의 영웅의 의지만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사회적 연대도 필요하다"며 미투 운동을 지지했다.
 
박원순 시장.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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