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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3등급 국가로 떨어진 일본을 반면교사로
2021-01-26 05:51:17 2021-01-26 05:51:17
1950년대부터 30년간 서양인들은 일본인들을 가리켜 종종 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고 불렀다. 돈 밖에 모르고, 눈앞의 이익만 좇는 일본인의 정체성을 대놓고 야유한 것이다.
 
일본은 일제 강점기에 획득한 군사기술을 적극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민간용 상품을 만들어 내다 팔았다. 이 상품들이 잇따라 히트를 쳤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넘쳐흘렀다. 한국에도 일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일본은 미국에 이은 경제대국, 이른바 G2가 됐다. 특히 1980년대에 이르러 일본인들은 굉장했다. 바야흐로 그들의 전성기였다. 미국 시장은 그들의 안방이었다. 소니TV와 토요타 자동차가 미국 곳곳을 누볐다. ‘메이드 인 재팬의 진격은 일제의 진주만 공습을 떠올릴 정도였다.
 
이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기밀을 빼내다 붙잡히는 등 세계 곳곳에서 산업스파이로 찍혀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대일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다. 오죽했으면 당시 41세의 도널드 트럼프가 일본을 비난하는 광고까지 냈을까. 트럼프는 198792일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보스턴 글로브 등 미국 3대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냈다.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일종의 공개 편지였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일본과 다른 나라들은 미국을 이용해왔다.(중략) 미국이 일본의 방위 비용을 공짜로 제공함으로써 일본은 경제선진국으로 도약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말이 옳든 그르든 일본은 파죽지세로 컸다. 트럼프의 광고 2년 뒤인 1989927일 소니는 미국 영화사 콜롬비아를 인수했다. 이 상징적인 사건이 극미경제의 절정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었다. 일본은 잃어버린 10을 포함,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지난 19일 발표한 ESG 평가보고서는 일본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ESG는 국가나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 즉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책임 경영(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무디스는 전 세계 144개국을 대상으로 한 ESG 평가에서 한국 등 11개국에만 최고등급인 1등급을 줬다. 이는 2등급인 미국, 영국과 3등급인 중국, 일본보다 높은 점수다.
 
특히 한국이 지배구조 분야, 즉 제도나 정책 신뢰성 및 효과성, 투명성 및 정보공개, 예산관리 등 4개 세부항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점이 눈에 띈다. ESG는 기업들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함께 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가치들이다.
 
일본이 3등급을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60년이 넘은 일본 자민당 정권의 1당 독재는 민주주의 가치를 저 만치 주저앉혔다. 정언유착, 정경유착 등 시대정신에 한참 뒤떨어진 반민주적 폐해가 상존해 있다. 정부가 바다에 오염수를 버린다고 해도, 코로나 방역을 엉망으로 해도 이를 바로잡을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과거사 반성은 말할 것도 없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언행을 보면 일제 강점기 만행은 아예 자신들의 머릿속에서 지운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교과서에 버젓이 거짓말을 담는다.
 
일본은 늙었고, 동시에 낡았다. 이런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그나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기회로 삼으려했던 도쿄올림픽도 물 건너갈 처지에 놓였다. 기적과도 같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본은 계속해서 3등급 국가로 평가받을 것이다. 
 
올해는 ESG의 원년이다. 돈벌이에만 혈안이 됐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경제 동물처럼 굴었다가는 태어나기도 전에 도태된다는 것이다. 우리 대기업 총수들이 앞다퉈 ESG를 강조하는 신년사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 사회가 어지럽고 어려워지면 극단 세력들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최근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커진 일본 사회가 그렇다. 현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극약 처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작년 수출규제 조치와 같은 도발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동시에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돈은 많았지만 결코 존경받지 못한 졸부의 말로를 보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행여 일본을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늘 되돌아 봐야 한다. 
 
이승형 산업 부국장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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