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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금소법 혼란이 금융사 탓?
2021-04-07 06:00:00 2021-04-07 06:00:00
증권부 염재인 기자
“향후 분쟁에 대한 부담으로 모든 사항을 기계적으로 설명하고 녹취하는 책임 회피성 행태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취지에 맞지 않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면서도 금융사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투자업권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언급한 말이다. 
 
이 같은 발언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열흘이 지난 시점에 나온 것이다. 금소법 시행 이후 현장 일선에서 혼란이 가중되면서 소비자 편의가 저해되지 않도록 금융사가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금소법 시행 이후 영업점 현장에서는 금융상품 가입 시간이 대폭 늘었다. 상대적으로 단순 업무로 분류되는 계좌개설조차 최대 1시간가량 소요되기도 했다.
 
특히 고객 안내 중 녹취 의무가 강화되면서 고객의 답변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고객 민원도 급증하고 있다. 영업점 일선에서는 비대면 가입을 유도하고 있지만, 법인 고객이나 미성년자일 경우엔 대면 업무를 피할 방법이 없어 임시방편에 그치고 있다.
 
급기야 금융당국은 지난달 30일 금융사 직원이 상품설명서를 빠짐없이 읽지 않아도 되며 동영상 등으로 대체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족한 탓에 혼란을 줄이기엔 역부족이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녹취가 의무가 아니라 일부 고위험 상품에 국한한다고 하더라도 금융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객에게 안내사항을 설명해 주고 이해했다는 피드백을 남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위에서 동영상 등 활용이나 필요한 부분만 설명하면 된다고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토로했다. 
 
금융위원장은 금융사가 "영혼 없는 설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금융사를 질책하고 나선 것이다. 금융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 가입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식의 조언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모바일 앱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의 경우 비대면 거래를 이용하려다가 어려움을 겪고 다시 영업점을 찾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제도가 안착되려면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지만, 금소법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법안도 아니다. 지난 2010년 법 제정방향이 제시된 이후 국회에서 계류하다가 지난 2019년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피해자가 발생하고서야 공론화되면서 법률안이 통과됐다.
 
금소법 국회 통과와 시행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금융사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에만 치중한 결과로도 해석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이름처럼 법안의 취지는 금융소비자 보호다. 지금이라도 소비자가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증권부 염재인 기자 yj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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