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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듄’, 아이맥스가 무조건 해답은 아니다
동명 SF고전 원작, 6권 4300쪽 분량→총 2부작 중 1부 155분
권력 투쟁 통한 세력 전쟁 vs 주인공 ‘폴’ 각성→ ‘투 트랙’ 연출
2021-10-19 00:00:03 2021-10-19 08:54:06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하반기 최대 기대작이란 수식어가 주목됐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동명 SF고전이 원작이다. 이 두 가지 만으로도 은 기대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들끓게 만들었다. 올해 초 국내에서 새로 번역돼 출간된 원작 소설은 무려 6권 분량 4300여 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종교 정치 인종 문화 등 인간 역사와 우주 그리고 철학적 메시지를 혼재시키며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관을 구축해 낸 걸작이다. 영화 역시 무려 155분에 달한다. 이번에 공개된 영화는 총 2부작 가운데 1편이다. 출연 배우도 현재 전 세계 상업 영화 시장에서 가장 티켓 파워가 막강한 배우들이 총 동원됐다. 더 이상 설명이 불필요하다. 문제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치와 그 기대치를 다소 엉뚱한 방향성으로 이끌어 간 연출자 드니 빌뇌브 감독에게서 찾아봐야 할 듯싶다. 전 세계 글로벌 시장에서 에 대한 찬사는 실로 막강하다. 하지만 을 해석한 드니 빌뇌브의 미묘한 어감차이는 오독’(誤讀)호도’(糊塗)에서 책임져야 할 듯하다. 드라마(스토리)와 비주얼의 무게추를 두고 영화 역사는 언제나 충돌해 왔다. 어느 쪽이 됐든 가장 완벽한 균형점과 무게추를 어느 지점에 놓느냐가 감독들의 고민이었다.
 
 
 
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연출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화려한 비주얼이다. 물론 드라마적인 요소에서도 상당히 단단한 연출력을 선보여 왔다. ‘마엘스트롬’ ‘그을린 사랑’ ‘프리즈너스등은 지금도 드니 빌뇌브의 드라마적 요소를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에게 글로벌 인지도를 안겨 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비주얼과 드라마 균형점이 어떻게 잘 들어 맞을 수 있는지를 톡톡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 호평을 이끌어 낸 컨택트그리고 악평이 쏟아진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양극단의 평가 속에서도 묘한 교집합을 이끌어 냈다. 다소 후퇴적이면서도 정체된 듯한 스크린 마스터로서의 아쉬움이었다. 두 작품 모두 화면과 스토리 균형점이 분명히 기울어진 느낌이었다. ‘은 앞선 두 작품 문제점을 조금씩 더 퇴색시켰고, 오히려 어떤 면에선 퇴보한 느낌마저 준다.
 
'듄'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앞서 언급했지만 원작 소설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방대하다. 하나의 주제로 묶어 낼 수 없는 다양성의 폭이 넓다. 때문에 출간 이후 영화화 자체가 이번을 포함해 단 두 번에 불과했던 점은 기술적인 면도 컸겠지만 2시간 이내 러닝타임에 을 오롯이 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번 드니 빌뇌브의 은 의외로 간결하다. 2부작으로 구성됐고, 이번 1부는 155분의 러닝타임이기에 후속편 역시 비슷한 분량이라면 일반 상업 영화 3편 분량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이번 1편에 담아낸 내용물은 원작을 읽지 않은 일반 관객이라도 사실 납득하긴 불분명한 지점이 많다.
 
'듄'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서기 10191년이 배경이다. 전 우주는 황제가 집권한 가운데 여러 제후 가문이 분할 통치를 하는 구조다. 이 가운데 제후 중 가장 높은 공작지위를 보유한 아트레이데스 가문 후계자 폴(티모시 살레메)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면서 전 우주를 구원할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다. 1편은 각성 이전의 폴이 겪는 여정을 그린다.
 
그는 매일 밤 꿈에서 아라키스 행성 여인을 만난다. 그 여인은 아라키스 행성 원주민 프레멘종족이다. 이 종족은 특유의 푸른 눈동자가 눈길을 끈다. 그 눈동자는 이 행성에만 존재하는 스파이스 때문이다. 이 물질은 전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이면서 생명유지에 필수인 자원이다. 하지만 현재는 이 자원을 하코넨 남작 가문이 독점 중이다. 하코넨은 황제보다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채 공공연하게 야심을 드러내며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겨냥한다. 이런 과정에서 황제는 공교롭게도 아트레이데스 가문 수장이면서 폴의 아버지 레토 공작(오스카 아이삭)에게 아라키스 행성 탈환을 명령한다. 이를 거부할 경우 반역이 된다. 하지만 수용할 경우 하코넨 남작 가문과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두 거대 가문 격돌 속에서 행성 원주민 프레멘들은 멸시와 천대의 대상으로만 전락하게 된다. 그들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쪽과 그들과의 공생을 통해 상생을 꾀했던 두 거대 가문의 속셈 그리고 이 판을 짜 맞춘 황제의 속셈. 이런 과정이 긴박하게 돌아가서면서 한쪽에선 폴이 겪는 내면의 혼돈이 그려진다.
 
'듄'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폴의 어머니는 여성 초능력자 집단 베세 게네리트 일원이다. 전 우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가문 후계자이면서도 어머니를 통해 특별한 능력을 이어 받은 폴. 여기에 밤마다 꿈에서 나타나는 프레멘의 소녀.
 
드니 빌뇌브는 2시간 35분 분량 가운데 2시간 이상을 폴의 혼돈스런 내면과 자아와 정체성이 확립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모멘텀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번 은 쉽게 말하면 투(two) 트랙이다. 하나는 황제를 중심으로 한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 세력 전쟁. 이 같은 아우라는 스타워즈에서 황제와 제다이가 중심인 제국군과 공화국군 격돌을 연상케 한다. 또 다른 시대극 걸작 왕좌의 게임에서 철왕좌를 두고 격돌하는 스타크와 라니스터 가문 전쟁도 떠오르게 한다. 흘러가는 기본 플롯 구조가 거의 흡사하다. ‘에서의 프레멘 종족 묘사 역시 스타워즈의 동어반복적 느낌도 강하다.
 
'듄'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스파이스 생산 독점을 둘러싼 행성 점유권 격돌은 워쇼스키 자매 연출작 주피터 어센딩에서 흐름을 찾을 수 있다. ‘주피터 어센딩에선 전 우주를 지배하는 아브락사스 가문이 지구 점유권과 수확을 놓고 형제간 내분 과정을 그렸다.
 
물론 이 언급된 작품들을 복제 재생산한 결과물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해당 작품들이 에서 영향을 받았단 주장이 더 설득력이 깊다. 문제는 이런 지점 모두를 드니 빌뇌브 감독과 제작진이 밀어 불이고 강행시킨 점이다. 앞서 언급된 작품 아우라가 느껴진 지점 자체가 SF 고전으로 여겨지는 에 대한 오독이며 호도인 셈이다. 이걸 덮기 위해 드니 빌뇌브는 아이맥스란 차선책을 끌어왔다. 최근 컨택트블레이드 러너 2049’를 통해 드러난 바 있는 그의 비주얼 완성도는 에서 완성형에 이른다. 하지만 의 비주얼은 드니 빌뇌브란 감독 이름값과는 상충되는 느낌이 강하다.
 
'듄'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영화는 비주얼과 스토리 혼재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농도로 이뤄지는 지가 완성도의 관건이 아닐까 싶다. ‘은 스토리 무게추가 이미 한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 상태에서 비주얼은 그 반대로 쏠려 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의 격돌 그리고 전쟁 포화 속에서 폴이 겪는 혼란과 위기가 그의 내면적 성장을 이끌어 가는 과정으로 흘러갔다면 어땠을까 싶다. 드니 빌뇌브는 폴의 성장과 두 가문 격돌을 분리시킨 채 끌어 간다. 때문에 폴이 원작 속에서도 메시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하지만 영화에선 주변 환경과 요소가 아닌 스스로의 각성으로 이뤄진 영원불멸의 존재로서만 끌어 올려져야 한단 감독의 강박적 설정이 관객의 스토리 이입을 어느 지점까지 도울지 의문스럽다. 폴의 각성 동력이 되는 미스터리 소녀(젠다이아)의 등장은 영화 마지막 10여분쯤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듄'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스토리 구성 즉 플롯 자체가 이런 식으로 무게추를 맞추지 못하니 아이맥스로 촬영한 비주얼 충격은 그저 충격일 뿐이다. 아이맥스 신봉자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전작들에서 선보인 아이맥스 촬영을 떠올리면서 의 결과물과 비교한다면 차이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비주얼과 스토리의 유기적 결합이 어느 정도까지 중요한지 말이다.
 
의 완성은 분명 자본집약적 콘텐츠 산업에서 진일보의 결과물일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기술적 지점 외에는 큰 주목을 해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결과물은 원작이 담은 방대한 세계관에서 찍고 싶은 것만뽑아내 자본을 집중시킨 잔치에 불과하다.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가 생존해 있다면 드니 빌뇌브의 에 대해 결코 유쾌한 반응을 내놓진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오는 20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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