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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내 삶을 바꾸는 정책이 많아지길
2017-09-28 06:00:00 2017-09-28 06:00:00
'디지털 성범죄'로 불리게 된 몰카(몰래카메라) 피해 대책이 발표됐다. 몰카 판매 단계부터 단속하고 복수를 목적으로 촬영된 일명 '리벤지 포르노'를 유포할 경우 벌금형 없이 징역형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불법 촬영물 유포로 피해를 입을 경우 정부가 채증과 삭제, 사후 모니터링, 법률 상담 등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촬영물 삭제 비용은 가해자에게 부과하기로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불법 촬영물 피해의 온상으로 알려진 소라넷 폐쇄부터 이번 대책이 발표되기까지 새로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했던 문제지만 대처가 지지부진했던 것뿐이다. 그동안 사건의 피해자는 늘었고, 몰카가 있을까 공중화장실 가기를 꺼려하는 불안한일상이 늘어났다. 이번 대책이 성과를 내기 전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상의 불안함을 이해하고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 최근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사회역학의 의미와 사례들을 소개한 책이다. 사회역학은 어떤 질병이 발생할 때 원인이 되는 사회적 요인을 찾는 것이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비교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몸이 아픈데도 참고 일한 빈도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해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건강을 이유로 일을 쉰 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적었다. 이 통계에는 '고용불안'이라는 사회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보면서도 정책의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정리해고 이후 노동자들은 불안 등에 시달렸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반면 1991년 경제위기를 겪은 스웨덴에서는 노동자의 10%가 실업을 한 상황에서도 자살률이 꾸준히 감소했다. 고용지원센터 등을 중심으로 정부가 실업자의 구직활동을 탄탄하게 지원했다. 쌍용차에서 해고된 이후 구직활동을 했던 노동자들의 62.0%는 취업, 창업,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직업훈련을 받지 못 했고, 구직과정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에서 차별을 받기도 했다. 제도와 정책이 사람들의 불안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 할 때, 반대로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 개인의 삶(건강)도 달라지는 것이다.
 
몰카로 인한 건강상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사회적 치료'의 첫 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사회적 요인들은 많다. 책에는 차별과 가난, 해고, 재난불평등 같은 사회적 요인이 개인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도 소개돼 있다. 문재인정부는 '내 삶을 바꾸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일상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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