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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MB와 국밥
2018-03-16 06:00:00 2018-03-16 06:00:00
지난 2007년 겨울은 제17대 대통령 선거로 뜨거웠다. 생애 첫 대선 투표권 행사 순간이 다가올 무렵 텔레비전에서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자가 연신 순대국밥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지금의 ‘먹는방송(먹방)’과 버금갈 정도로 '맛있게' 먹는 게 퍽 인상 깊었다.
 
권위를 내려놓고 서민 경제의 상징인 시장통 국밥집에 홀로 앉아 한 끼를 해결하는 대통령. 평범한 시민인 가게 '욕쟁이 할머니'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대통령. 국민이라면 누구나 바랐을 이 장면이 지나고 그 겨울 이 후보자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이 됐다. 각종 개인 비위 의혹이 있었지만, 서울시장 때부터 유명했던 특유의 '불도저식' 국정 운영으로 나라 경제 살리기에 전념할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다.
 
10년이 훌쩍 지난 14일, 전직 대통령으로는 네 번째로 검찰과 마주 앉은 이 전 대통령 곁에 다시 국밥이 등장했다. 점심과 저녁 식사 메뉴로 각각 설렁탕과 곰탕을 먹으면서다. '피의자'가 식사 때 뭘 먹었느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11년 전 광고에서 국밥을 먹던 이 전 대통령이 오버랩됐다.
 
국밥을 먹었다는 사실 하나만 같을 뿐 과거와 현재 이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전혀 다르다. 유력 대선주자로 추앙받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열 손가락으로 세기도 부족한 혐의가 있는 피의자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이 국밥을 먹었다고 하자 "나라를 말아먹은 게 아니냐"는 일부 누리꾼의 비아냥도 보였다. 여전히 "다스는 누구 것이냐"며 이 전 대통령 일가의 비위 의혹에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국민 의사가 반영된 탓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전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검찰청에 21시간 머문 이 전 대통령은 이전처럼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검찰 조사 직전에도 대국민 사과와 함께 "할 말이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번 일이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전의 "정치보복"과 같은 주장은 없었지만, 핵심 참모들이 입을 여는 상황에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 광고를 보니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누구나 열심히 땀 흘리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국민 성공 시대를 열기 위해 이명박은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기호 2번 이명박이 해내겠습니다"라고 강조한다. 조사 당일 똑같이 '배고팠을' 이 전 대통령은 과연 국밥 한 술을 넘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때의 메시지를 기억했을까.
 
김광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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