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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파나마 운하와 모기장
2018-08-17 06:00:00 2018-08-17 06:00:00
세계일주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마젤란이 빅토리아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할 때는 1519년부터 1522년까지 1080일이 걸렸다. 이후 세계일주 항해가들은 모두 2~3년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들에게는 빨리 가는 것보다 발견하고 빼앗는 게 더 중요하기는 했다.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때는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출판된 1872년 이후다. 쥘 베른은 당시에 존재하는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80일이 걸릴 것이라고 계산했다. 실제로 1889년 미국인 기자 넬리 블라이가 <뉴욕 월드>의 의뢰를 받아 최대한 짧은 시간 동안 세계 일주에 도전했는데 이때 72일이 걸렸다. 그녀는 아메리카와 유럽에서는 증기선과 철도를 이용하고 아시아에서는 말과 당나귀, 인력거와 돛단배를 사용했다. 370년 사이에 세계일주 시간이 2년에서 10주로 단축된 것이다.
 
바다를 횡단하는 데는 여전히 장벽이 남아 있었다. 길이가 무려 1만 5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아메리카 대륙이 바로 그것. 하지만 지름길을 만들 틈새가 있었다.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눈으로 본 스페인 출신의 정복자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가 1513년에 남북 아메리카 사이의 좁은 육교(陸橋)를 본 것이다. 발보아는 스페인 국왕 펠리폐 2세에게 이곳에 운하를 뚫으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왕은 거절했다. 육교가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진입에 적절한 장벽이 될 것이고, 또 인간에게 운하가 필요했다면 아마 신이 먼저 그리 만들어놓으셨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어디 그리 얌전한 존재인가! 유럽에서 아시아로 진출할 때 굳이 아프리카를 빙 돌아가야 하는 게 성가셨던 유럽인들은 1869년에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다. 건설 책임자는 프랑스 외교관이자 기술자인 페르디낭 마리 드 레셉스(1805~1894). 수에즈 운하를 개통한지 10년이 지난 1879년 레셉스는 당시 콜롬비아에 속해 있던 파나마 지협을 관통하는 운하 건설권을 획득했다. 길이 192킬로미터의 수에즈 운하를 뚫은 그에게 길이 82킬로미터의 파나마 운하는 우습게 보였다.
 
평평한 지도에서는 정작 중요한 정보는 놓치기 쉽다. 수에즈 운하의 경우 파내야 하는 육지의 최고점이 해발 16미터에 불과했다. 이에 반해 파나마 운하에서는 50미터 이상인 곳이 8킬로미터가 넘었으며 심지어 102미터에 달하는 곳도 있었다. 이 많은 흙과 암석을 제거하는 일은 일찍이 역사에 없었다.
 
은행은 대출을 거절했다. 하지만 레셉스는 프랑스의 영웅이었다. 그는 프랑스인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8만명의 프랑스인이 수에즈 운하 건설비용의 두배가 넘는 액수를 투자했다. 1880년 1월1일 레셉스의 상징적인 곡괭이질로 세기의 건설이 시작됐다. 프랑스 기술자 3000명과 카리브 제도 출신의 흑인 노동자 2만명이 작업에 투여됐다.
 
프랑스인들은 파나마 지협에서도 프랑스식 삶을 영위하려고 했다. 그들은 주거지에 정원을 꾸미고 나무 주위에 원형의 도랑을 파고 물을 담았다. 개미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침대에 벌레가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고 침대 다리도 물통에 담가놓았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오두막에는 방충망을 설치하지 않았다. 우기가 시작되자 황열병과 말라리아가 돌았다. 프랑스인들의 삶의 방식은 모기에게 최적의 환경이었던 것이다. 기술자와 노동자 2만 2000명이 죽었다. 레셉스는 1988년 파산했으며 수만명의 프랑스인이 저축을 날렸다.
 
1904년 미국 컨소시엄이 운하 건설을 다시 시작했다. 윌리엄 크로포드 고거스(1854~1920) 소장 지휘 아래 미 육군 공병대는 모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00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콜롬비아가 파나마 운하 공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미국은 파나마 토착민을 후원해 그들이 독립해서 국가를 세우게 만들었다. 마침내 1914년 8월15일 태평양과 대서양이 이어졌다. 태평양과 대서양의 바닷물이 만나서 춤을 췄다. 파나마 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가 완공된 것이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 동부와 서부까지의 뱃길을 2만4100km에서 9820km로 줄여줬다. 덕분에 파나마는 사실상 미국의 지배에 들어가게 됐다. 파나마는 2000년에야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겨우 갖게 됐다. 결국 중앙아메리카 역사는 모기와 모기장이 결정한 셈이다.
 
파마나 운하 완공일로부터 정확히 31년 후 한국이 일제 강점에서 해방됐다. 압제에서 벗어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하자.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대한 독립 만세!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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