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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주년 프로젝트' 정태춘 "내 안에는 아직 내 이야기가 흐른다"
정태춘·박은옥 음악 자취 심도 깊게 분석한 한국대중음악학회 학술회
대담회 참석 정태춘 "야만적인 산업 시스템에서 우린 뭘할 수 있을까" 고민
2019-06-14 17:55:06 2019-06-14 17:55:0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요즘 내 노래는 내 삶의 아주 작은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9일 오후 3시경,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25회 한국대중음악학회' 학술회. 앞서 2시간 동안의 세션 발표 후 대담회에 선 정태춘(65)이 말했다. "내 음악 창작에 관한 모든 작업이 이제 다 끝났다 생각한다"는 그는 "그런데 내 안에서는 여전히 나의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붓글씨와 가죽공예 같은 다른 활동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붓글을 쓰면서도 늘 고민을 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조형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따로 공부한 적이 없으니 답답하긴 한데, 시각적 조형이 주는 울림이나 힘 같은 것은 음악의 청각과 유사한 부분도 많습니다."
 
'아직도 몸 속에서 이야기가 흐른다'는 정태춘이 올해 가수 데뷔 41주년을 맞았다. 그의 삶과 음악은 종종 밥 딜런의 그것과 비교되곤 한다. 첫 음반 '시인의 마을(1978)'부터 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를 내기까지, 그는 김민기와 오늘날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비판적 포크 가수이자 음유 시인으로 꼽힌다.
 
문학적 서정과 사회적 메시지를 아우른 그의 노랫말은 사반세기를 진동시켰다. 동시에 전교조 합법화 싸움, 음반 사전심의 제도 철폐,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에 앞선 그는 문화·사회적 운동가로서의 삶도 보냈다.
 
지난 4월2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 출판 기자간담회. 사진/뉴시스
 
이제 그는 '시장이 모든 담론을 먹어 버린' 상황에 맞서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이 일환으로 아내이자 평생의 음악 동반자인 박은옥(62)과 '데뷔 40주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계 예술인 144명이 모여 '정태춘·박은옥 40 프로젝트 사업단'을 꾸렸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이은 명필름 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고 김준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프로젝트 총감독으로 참여했다. 앨범부터 전시, 공연, 출판, 포럼, 다큐멘터리 제작 등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로 부부의 음악 자취를 밟고, 시장 지배로부터 벗어난 예술의 이야기를 펼쳐오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날 학술회는 2부에서 박태춘과 박은옥의 음악생애를 심도깊게 다루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김준기 전 관장이 차례대로 발제자로 나섰고, 이후 김창남 교수의 사회로 정태춘이 직접 참여한 대담회가 진행됐다.
 
◇'물'의 개념으로 환원되는 정태춘 작품 세계
 
"우리 시대에 비판적 포크 가수를 꼽으라면 김민기와 정태춘입니다. 이 두 분이 노래한 세상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는 두 뮤지션의 세계를 구분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김민기가 "폭압적인 유신시대에 청년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기성세대의 세상과 대립시키는" 작품들을 주로 썼다면, 정태춘은 "전두환 정권 이후 학생 운동 대중화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 30~40대 장년기의 눈에 포착된 세상의 모습을 보여줬다('비판적 포크, 물, 그리고 읊조림'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 대중음악학회 2019.6.1. 발표문 중)"고 그는 말했다.
 
"김민기 선생님은 51년생, 정태춘 선생님은 54년생입니다. 두 분은 나이대가 크게 차이나진 않았지만, 비판적 포크의 나이가 달랐던 것이죠. 특히 정태춘 선생님은 이전 세대나 경험했을 법한 황포돛배가 있는 나루터, 고된 농사일을 일상으로 체험하며 성장하셨고, 그런 체험과 감수성을 음악에 담았습니다. 한국 포크에서 그간 한 번도 작품화된 적 없는 영역이었죠."
 
그는 "조용필과 이정선 정도 외에 정태춘처럼 사반세기 동안 끊임 없이 자작곡을 발표해온 가수는 없었다"며 "그 중에서도 긴 세월 음악으로 작가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가수는 정태춘이 독보적이다. 문학 측면을 중심으로 노래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정태춘은 한국 포크의 전반, 한국대중음악사 전반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이영미 대중예술연구자는 시기별 가사에 등장하는 '물'을 기준으로 정태춘의 작품 세계를 분석했다. "'서해에서'나 '회상' 등 작업 초기 강과 바다는 사랑과 이별의 공간적 배경으로만 기능합니다. 이후 '정동진', '건너간다', '수진리의 강' 같은 곡에서는 희망과 치유로서 기능하기도 하죠. 강과 바다를 포함한 물은 정태춘 선생님 작품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개념이었습니다."
 
데뷔 41주년을 맞는 가수 정태춘(오른쪽)과 데뷔 40주년을 맞은 박은옥. 사진/뉴시스
 
◇자기의식 공유하는 장을 만들다
 
"고교 시절 제 또래들은 마이클 잭슨이나 전영록, 이선희를 좋아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저는 이런 공연이 있구나, 그야말로 충격을 먹었습니다."
 
이후 발제자로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가 나섰다. 정태춘의 음악과 공연 의의를 한국 대중음악사 안에서 풀어나갔다. 그는 "대중음악사적 의미라 하면 작품과 활동, 수용 방식, 사회적 영향력 등 총체적인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며 "특히 정태춘은 신곡이 나오면 공연을 하는 일반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본인의 작가의식을 공유하는 장으로서, 공연을 활용했다. 이는 오늘날 라이브 공연 문화 확산, 주류에서 벗어난 대중음악신 활성에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41년 활동 기간과 지속성, 총 16장의 음반 양을 따져 봤을 때도 말할 필요 없이 독보적인 뮤지션이었습니다. 가사의 메타포는 목소리 톤에 거의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고, 곡의 개성과 완성도, 보컬과 화음 전 영역에 걸쳐 미학이 있다고 봅니다. '뚝배기 같다' 표현하고 싶습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는 각 곡에 담긴 가사의 주제도 세부적으로 분류했다. 그는 "임의로 분류했지만 고향과 농촌을 다룬 19곡, 종교를 다룬 3곡, 현실비판 33곡 등으로 나눌 수 있다"며 "예술가로서의 자유로움과 폭넓음을 보여주는 작가다. 현실비판에서도 국가폭력, 계급, 분단, 실향, 평화 등 여러 갈래로 나뉜다. 여러 소재와 주제, 관점을 아우르는 묘사의 깊이가 정태춘 음악 서사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평했다.
 
"요즘은 인스타그램만 잘 활용해도 유능한 예술가라 부릅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예술에 요구하는 역할을 가장 잘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음반 사전심의 제도 철폐에 맞서며 국가와 자본 권력에 독립성, 비판성, 자율성을 유지했다는 점, 작품과 삶이 다르지 않았다는 점. 전통적, 실천적 예술가의 상을 구현한 것 같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대중음악학회 학술회. 사진/뉴스토마토
 
◇표현자이자 행동가로서의 예술가
 
정태춘의 지인들은 그가 세 번의 깃발을 들었다고 한다. 1989년 전교조 지지 전국투어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 1990년 음반 사전심의제도 철폐에 맞서 불법으로 제작한 '아, 대한민국…',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대추리 평화예술' 운동.
 
이중 마지막 '대추리 평화예술' 운동은 그가 자신의 고향 주민들을 위해 시도한 예술 활동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후 일본군과 미군에 의해 두 차례 삶의 터전을 잃은 이 곳 주민들은 2007년 미군기지 확장이전으로 퇴거명령을 받았다.
 
정태춘을 비롯한 예술가들은 2003~2007년 마을을 거점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전개했다. 미술, 문학, 노래, 연극, 춤, 영화, 만화 등 여러 장르에 걸친 10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하거나 주기적 방문 형태로 현장예술 활동을 벌였다. 
 
이날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김준기 전 관장은 대추리 평화예술 운동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는 "정태춘은 노래 창작과 가수 활동 이 외에 표현자로서, 혹은 행동가로서의 폭넓은 활동들을 꾸준히 보여왔다"며 "그의 활동은 예술을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예술로 확장시켜 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내 속에서 흘러 넘치는 이야기, 멈춘 적 없어"
 
이날 발제자들과 함께 대담회에 오른 정태춘은 "내 속에서 흘러 넘치는 이야기들은 멈춘 적이 없었다"며 "앞으로도 붓을 잡거나 조형 공예로 내 이야기를 해나갈 것"이라고 얘기했다.
 
또 '물'의 개념으로 자신의 노래를 분석한 것과 관련 "너무 적절한 키워드였던 것 같다"며 "물은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그리고 물에 대한 내 자신의 기억들이 많다. 2012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때도 쓰고 보니 7~8곡이 물 얘기였다. 단절과 그 너머에 관한 상상의 이미지가 내가 가진 욕망이나 무의식에서 찾아 헤매다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대중음악계를 위한 역할과 관련한 질문에서는 "요즘에는 대중음악이라 구분 짓는 것도 과연 적절한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시장 밖 예술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40주년 프로젝트 역시 시장 지배로부터 벗어난 예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강고하고 야만적인 산업 시스템 속에서 우린 뭘할 수 있을까. 인간은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최근 들어 오랜 만에 너무 큰 환대를 받고 있고, 그래서 자격 상실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정태춘은 고개를 저었지만 김준기 전 관장은 대신 정태춘의 행보를 설명했다. "결코 여유롭거나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실 순 없을 겁니다. 평택이라는 곳과 정태춘의 관계,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일이 있어야 하고요. 도시재생에 관한 음악 프로젝트 같은 화두도 있을 겁니다. 공인으로서 해주실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정태춘. 사진/뉴스토마토
 
잠잠한 몇분의 침묵의 시간, 그가 기타를 멨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봄날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흑염소를 풀어 놓은 비탈산을 줄줄이 오르고 있었죠. 풀들이 흩날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가사를 정리했습니다. '외연도에서' 들어보시죠."
 
'뱃사람들처럼 나도 뒷짐을 지고/새벽 물 빠지는 작은 포구를 바라보았다/ 교장이, 오늘은 파도가 너무도 잔잔하군요라고 말하기도 전/그들은 벌써 그들의 바다로 나갔다' 
 
41년간 흘러온 정태춘의 물은 이제 어디를 향해 흐를까. 그의 이야기는 영원히 마르지 않을 듯 보였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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