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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이 자초한 DLS사태)③ 수익 확대에 눈먼 시중은행, ‘파생상품 판매’ 책임 없나
'안전한' 은행 이미지 악용…불완전판매 소지 제기
비이자이익 위해 소비자 외면·경영진 대처도 '도마'
2019-08-26 08:00:00 2019-08-26 08:00:00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은행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판매한 파생상품 뒤에는 시중은행의 이익 우선주의와 허술한 규제가 있었다. 은행원들이 사기 상품(KIKO)을 팔고 사기 판매 행위(DLS)를 한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연동 파생상품에 가입해 수억원 규모의 피해를 입은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의 DLS사태에 대한 평가다. 독일과 영국 금리에 연계된 DLS(파생결합증권)의 원금 전액손실 가능성이 커진 배경에는 고수익 추구를 위해 판매 경쟁에 몰두한 은행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서 고객이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백아란기자
 
'DLS쇼크'에 시중은행 긴장…당국 현장검사·법적 분쟁도 예고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S·DLF)이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은행권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당장 내달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DLS에서 대규모 투자손실이 예고된 가운데 금융당국의 현장검사와 투자자의 법적 분쟁도 이어지고 있어서다.
 
은행권은 투자자 동의 여부 등을 녹취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등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증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은행에서 개인에게 손실 위험에 대한 고지를 어느 정도로 했느냐를 놓고 불완전 판매에 대한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은행 이미지를 악용해 고위험 상품을 팔았다는 의미다. 특히 파생상품 판매 수수료가 은행 비이자 이익에 반영되는 만큼, 은행이 KPI(핵심성과지표) 등 실적을 위해 무리한 판매를 자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상 판매사인 은행은 DLS 투자원금의 1.0~1.5%를 수수료로 뗀다. 지난 7일 기준 DLS·DLF 잔액은 총 8224억원으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각각 4012억원, 3876억원을 팔았다. 판매액의 1%를 수수료로 계산하면 우리은행은 40억원을, KEB하나은행은 38억원을 챙긴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파생상품 가운데 DLF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마이너스 0.25%일 경우 6개월 만기에 연 4%에 해당하는 수익을 지급하는 형태로, 여타 파생상품들 또한 만기가 4~6개월에서 1년~1년6개월 등으로 비교적 짧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단기간에 판매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로인해 올해 상반기 우리은행(550억원)과 KEB하나은행(601억원)의 수익증권 관련 수수료는 총 1151억원 수준으로 작년에 비해 10.04% 증가하기도 했다. 문제는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긴 은행이 유사시 손실은 전부 투자자가 떠안는 상품을 팔면서도 위험 고지를 등한시한 정황이 있다는 점이다.
 
DLS·DLF판매에 수수료 1.5% 책정…KPI 등 실적압박 문제도 수면 위 올라
 
키코 공대위와 금융정의연대 등은 23일 서울중앙지검에 우리은행을 DLS사기판매혐의로 고발하며 “올해 3월부터 독일 10년 국채금리가 0%이하로 떨어지고 시장상황이 금리 하락추세가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에서도 우리은행이 이를 속이고 고객들에게 1266억원 상당의 DLS를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은행원은 상품을 팔 때 상품의 수익률과 원금손실 가능성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은행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불완전판매가 되며, 은행은 일정 비율의 손해를 투자자에게 배상해야 한다.
 
경영진의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은행 경영진이 수수료 수익을 위해 KPI 등을 무기로 영업점에 실적을 올리도록 압박하고, 독일 국채 금리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KEB하나은행 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투자자와 직원 보호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KEB하나은행 노조 관계자는 “2016년 10월 출시된 KEB하나은행의 금리연계 DLF는 2조원가량 누적판매를 기록한 상품이지만, 지난 3월부터 금리인상 기조였던 미국 금리가 미·중 무역분쟁 등 세계 이슈가 맞물리면서 기초자산금리가 급격히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4월부터 PB들이 관련 부서에 발행사의 콜옵션 행사와 이미 일부 손실이 발생된 상태에서라도 고객들이 손절할 수 있도록 환매수수료 감면 등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경영진에서 자본시장법 위배와 중도 환매수수료 우대 시 타 고객 수익에 미치는 영향, 배임 우려 등을 내세우며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소비자원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손태승 우리은행장과 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은 '신뢰'라는 가치를 먹고사는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라는 위치에 있지만 4000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진솔한 사과 한마디가 없다”면서 “금융상품을 전문 유통하는 은행이 판매할 상품을 선별할 능력이 없고, 어떤 문제가 시장에 야기될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오로지 수수료 수익에만 집중해 상품을 판매했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은행권에서는 설명서 등을 통해 고위험 상품에 대한 안내가 이뤄지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와 연관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KPI 등 실적 압박의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은행 한 관계자는 “개별은행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통상 상품을 출시하기 전에 리스크 등을 검토하는 작업을 거친다”면서 “이 과정에서 금리 하락을 예단하지 못했던 점이 DLS사태를 부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상품 손실에 대해 고지는 설명서나 콜센터 등을 통해 여러 번 나가기 때문에 피해자가 (불완전판매 여부를)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대부분의 투자자가 VIP라거나 고액 자산가인 만큼 은행에서 고의로 원금손실이 날 상품을 판매했다고 보기엔 어렵지만, KPI등을 맞추기 위해 은행원들이 신용카드라거나 여타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빈번하게 있는 만큼 은행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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