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녹천에는 똥이 많다
입력 : 2020-09-22 07:00:00 수정 : 2020-09-22 07:00:00
최병호 공동체팀 기자
훗날 역사에선 2020년 대한민국을 '코로나19'라는 단어로 기록할 테다. 올해 2월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10월을 앞둔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이슈가 코로나19와 관련되지 않은 게 없다. 다른 쟁점은 감염병으로 죄다 묻혔다. '코로나19 이야기만 하다 1년이 지났다'는 농담을 가볍게 흘려듣기 어려운 게 올해 풍경이다.
 
그런데 훗날 2020년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된다면, 아마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난 시대였다고도 기억되리라. 올해 신문 1면들을 살펴보니 제 잇속을 챙기기 급급한 개인과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만 보여서다. 정치면만 봐도 두 전현직 법무부 장관에 관한 논란과 검언유착 의혹, 정치권의 이해충돌 논란, 정의연 의혹, 음모론과 진영주의로 가득했다. 거기서 나온 말과 말의 다툼엔 갈등을 풀고 사회를 진일보하게 하려는 숙고가 실종됐다. 적대와 생채기, 감정싸움만 남았다.
 
미담이나 찾자고 사회면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오염된 영혼을 정화하고 성찰의 기회를 줘야 할 종교는 어떤가. 코로나19 초기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 방역거부 논란을 빚고 감염병이 유행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요즘엔 일부 기독교 교회가 방역을 거부해 물의를 일으켰다. 일부 종교 지도자는 아예 감염병의 근원이 현 정부라고 주장하며,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순교'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생명을 구하는 직업으로,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온 의사들은 코로나19로 확진자가 수백명씩 나올 때도 공공의대 설치 문제를 놓고 정부와 반목했다. 국민의 불안과 사회적 여론은 안중에도 없었다. 코로나19로 돌봄공백이 커진 새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화재로 숨진 인천 두 형제의 사고 소식은 국민을 또 충격에 빠트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이 느꼈을 감정을 단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어떤 개운치 못한 느낌과 걱정, 코로나19 난리가 계속되고 있다는 피로감과 상실감, 그러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무력감 등등일 것이다. 번듯한 줄 알았던 한 사회가 질병과 온갖 논란으로 점철되는 데서 느껴진 사상누각의 불안감도 커진다.
 
소설가 이창동은 1992년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소설을 냈다. 막 지하철이 들어서고 아파트단지가 생겨나는 서울 녹천이 소설의 무대다. 주인공은 녹천에 살게 되면 중산층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번듯한 아파트단지는 사실 쓰레기를 묻어 만든 퇴적층 위에 지었고, 길가엔 공사장 인부들과 주민이 싸질러놓은 똥과 악취로 가득했다. 거대한 오욕으로 인해 품위를 잃어버린 세상, 그 안의 허망과 상실감을 똥으로 표현한 셈이다. '똥이 많다'는 건 문학적 표현일 뿐일까. 올해 뉴스들을 돌아보니 2020년 대한민국에도 똥은 여전히 많다.
 
최병호 공동체팀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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