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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두산중공업, 살찔 일만 남았다
2020-09-23 06:00:00 2020-09-23 06:00:00
두산그룹은 올해 초 두산중공업 경영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채권단으로부터 3조6000억원을 긴급 지원받았다. 그때만 해도 두산중공업의 앞날은 암담해 보였다. 1970년대 말 한국중공업처럼 또다시 부실기업의 낙인이 찍힌 채 다시 국영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우려는 차츰 불식되고 있다. 터널의 끝자락이 보인다. 두산그룹과 두산중공업이 숨가쁘게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한 결과다.
 
두산중공업은 채권단 지원을 받으면서 3조원 규모 자구안을 마련했고, 그 약속이 대부분 이행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 7월 클럽모우 CC를 하나금융·모아미래도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지난 4일에는 1조3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두산중공업의 자구노력을 ㈜두산이 측면지원하고 있다. 지난달 네오플럭스 지분 96.77%를 신한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두산솔루스와 모트롤사업부도 잇따라 매각하기로 했다. ㈜두산은 이렇게 마련된 자금으로 두산중공업 유상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대주주의 책임있는 자세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비롯한 ㈜두산 대주주들은 보유 중인 두산퓨얼셀 지분 23%를 두산중공업에 무상증여했다. 두산중공업은 그동안 2차례 명예퇴직을 통해 정든 직원을 내보내고 일부 직원에 대한 휴업까지 강행했다. 직원들이 그렇게 희생했으니, 대주주들도 그 고통을 떠맡는 것은 당연하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이행했으니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에 따라 두산중공업은 두산퓨얼셀 최대 주주가 된다. 두산퓨얼셀은 세계 발전용 수소연료전지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두산중공업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두산중공업은 2013년부터 1조원가량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한국형 표준 가스터빈 개발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세계 다섯번째로 대형 가스터빈 독자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또 국내에서는 유일의 해상풍력 발전기 공급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국내외에서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담수화플랜트 사업에서도 해외에서의 역량을 자랑해 왔다.
 
이번에 두산퓨얼셀까지 합세하니 수소연료전지, 풍력발전, 가스터빈으로 이어지는 친환경 에너지 대기업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상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때마침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그린뉴딜과도 잘 어울린다. 작은 이익을 버리니 큰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됐다고 여겨진다.
 
두산그룹은 두산타워와 두산인프라코어도 매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골프장이나 두산타워는 한때 운영하던 면세점 사업과 마찬가지로 두산의 본업과 거리가 멀다. 더욱이 친환경에너지 대기업이 되겠다고 하는 터이니, 그 거리는 더 멀어졌다. 따라서 이런 사업들은 해당 분야에 노하우가 많은 기업인에게 넘기는 것이 좋겠다.
 
이에 따라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는 상당히 양호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앞으로 두산중공업의 부채비율이 현재 293%에서 150%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단테의 <신곡>에는 주인공 단테가 천국을 여행하며 중세 최고의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자리에서 아퀴나스는 단테에게 "길을 잃지 않으면 살이 찐다"는 말을 건넸다. 요즘 두산중공업에게 잘 들어맞는 말씀이다. 친환경 에너지 대기업이 되겠다는 지금의 결심을 착실하게 밀고 나간다면, 이제 살찔 일만 남은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신한울원전 3호기와 4호기 공사중단 등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타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억울하다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중단된 원전공사가 언젠가 재개될 수도 있다는 희망도 아마 갖고 있을 것이다. 모두 이해된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이나 기대가 당장 도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우선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기업을 보다 튼튼히 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기대가 나중에 꽃을 피울 수 있다.
 
필자는 약 20년 전 산업자원부 출입기자 시절에 2차례 장관과 함께 중동지역 취재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두산이 진행하던 담수화플랜트 사업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에서 일하던 두산중공업 임직원에게서 성취의 즐거움과 뿌듯함이 넘쳤다. 당시 중동에서 오랫동안 영업활동을 한 임원과 함께 교포의 집을 방문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모두 유쾌한 추억이다. 그렇게 자부심 가득하던 두산중공업이 최근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요즘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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