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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당관세 0%' 조치에도 '슈거플레이션' 불안 여전
정부, 연말까지 설탕 및 원당 할당관세율 0% 적용
B2C 가격 제동은 걸리겠지만…B2B 가격 인상은 변동 없는 상황
식품 업계, 단번에 가공식품 가격 인상할 수도
2023-06-02 06:00:00 2023-06-02 06:00:00
 
[뉴스토마토 김충범 기자] 정부가 '슈거플레이션(설탕+인플레이션)'을 제어하기 위해 올해 연말까지 설탕 할당관세율 '0%'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책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설탕 가격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설탕 산업과 밀접히 연관된 식품 업계가 현실적으로 가공식품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입 설탕(10만5000톤)과 관련해 시행일 이후 통관되는 약 8만톤의 할당관세율을 기존 5%에서 연말까지 0%로 낮춰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원당(Raw Sugar)의 경우 수입 전량에 대해 기본세율을 3%에서 연말까지 0%로 낮춥니다.
 
이는 설탕과 원당에 붙는 관세를 연말까지 면제해 주는 것으로 초강수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할당관세가 낮아진 제품은 일정 기간 수입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정부의 조치는 세계 설탕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따른 것입니다. 국제 설탕 가격은 인도, 태국 등 주요 생산국들의 작황 부진으로 지난해 말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는데요. 지난달 말에는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5일 기준 1톤당 설탕 가격은 699달러로 2011년 가격의 87.4% 수준까지 올랐고, 원당 가격은 549달러로 2011년의 77.6%에 달했습니다.
 
일단 정부는 이번 관세 인하 조치로 더디게 들어왔던 설탕 할당관세 물량이 원활하게 도입되는 토대가 마련되고, 원당 수입국도 확대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관측했습니다.
 
그간 설탕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무관세가 적용됐던 호주, 태국 등에서 수입해 왔는데요. 비록 한시적이긴 하지만 하반기 작황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브라질과 같은 국가들들로부터도 관세 없이 수입이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제당 업계에 소비자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한 상태입니다. 제당사들 역시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는 입장을 표했습니다.
 
문제는 정부의 이번 조치로 슈거플레이션에 제동이 걸릴지는 미지수라는 점입니다.
 
국내 설탕 산업 구조를 살펴보면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사가 연간 원당 184만톤을 수입해 설탕 143만톤을 생산합니다. 이 중 92%인 119만톤은 음료, 사탕, 제빵 등 식품 업체들을 통한 '기업 대 기업(B2B)' 거래 형태로 소비되는 구조인데요.
 
이미 주요 설탕 제조사들은 지난달 식품 기업에 공급하는 이 B2B 설탕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기업 대 소비자(B2C)' 형태의 소비자 가격 인상 자제에는 나설지 몰라도 B2B 설탕값 인상에는 변동이 없는 만큼, 정부 정책의 실효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특히 B2B 설탕 가격이 인상될 경우, 식품 및 외식 업계가 올해 하반기 이후 그간 억눌려왔던 가공식품 가격 인상분을 단번에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부담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됩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설탕 산업이 식품 업계 전반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조치만으로 슈거플레이션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은 정부도 알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설탕, 원당 가격을 직접 제어할 수는 없다. 때문에 이번 조치는 정부가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는 차원에서 마련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세워진 설탕 팻말 모습. (사진=뉴시스)
 
 
김충범 기자 acech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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