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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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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입니다
"변호사님, 선 넘지 맙시다"

2024-04-04 10:21

조회수 :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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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 운전으로 오토바이 배달 기사를 치어 숨지게 한 DJ의 변호인이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탓하는 변론을 해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변호인은 지난 2일 첫 공판기일에 참석해 "도로 교통법상 오토바이는 1차로로 다니지 못하게 돼 있는데, 숨진 피해자는 사고 당시 편도 2차로 도로의 1차로로 달리고 있었다"면서 "피해자가 법을 준수해 2차로로 갔으면 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답니다. 아무리 의뢰인의 형량 감경을 위해서라지만 선 넘었습니다.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고인을 '죽음을 자초한 자'로 만들었습니다. 나도 잘못했지'만' 상대도 잘못했다는 논리인데 비열한 변명입니다. 세치혀로 피해자를 두 번 죽였네요. 제가 판사라면 반성하지 않는다고 보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무거운 형을 선고할 겁니다.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오토바이 배달기사를 치어 숨지게 한 DJ 측이 변론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해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이미지=관련 기사 댓글 캡처)
 
이외에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선 넘은 변론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나아가 모욕을 일삼기도 하죠. 서울 강북을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사퇴한 조수진 변호사 건이 대표적입니다.
 
조 변호사는 과거 성범죄 가해자들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2차가해 하는 등 상식선을 벗어난 변론을 펼친 것이 문제가 돼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조 변호사는 고교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사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스쿨미투 운동을 한 이력이 있었고 사건 후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하거나, 자신의 블로그에 성범죄 가해자들에게 감경받는 방법을 공유하고 10세 아동에 대한 성착취 사건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이력을 홍보하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변호사들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변호사로서 의무를 다한 것이 왜 국회의원 자질 부족으로 귀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조 변호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피고인을 변론한 것일 뿐 변호사 직업윤리 위반으로 볼 수 없으며 이를 문제 삼아 국회의원이 되기에 부적격하다고 판단되는 건 부당하다는 겁니다. 
 
재고할 가치도 없는 말장난, '궤변'입니다. 사회에서 넘지 말아야 할 윤리의 최저선 즉 타인의 존엄을 침해한 것을 비판하는데 난데없이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변호사로서 직무를 수행한 게 뭐가 문제냐"고 반박하니 말입니다. 혹시나 직역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과한 비난일까 하는 생각에 질문 폭탄을 던져 주변을 귀찮게 하고 변호사 윤리 장전을 찾아보기도 하는 등 나름의 자기 검열도 거쳤습니다만 결론은 같습니다. 오히려 반감만 커졌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피고인을 변호하는 이들은 변호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불성실한 변론을 한 것인지 되묻고 싶네요. 정의감이 투철하지 않아도 상식이 있다면 으레 화가 날 일인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항변하는 변호사들을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밥줄이 달린 문제 앞에선 별 수 없는 걸까' 싶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요, 가해자를 변호하면서 사회 정의를 훼손하거나 피해자를 무고한 사람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는 건데요. 법망을 피하는 기술로 얻어낸 결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자랑해서도 안 되고요. 백번 양보해 승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2차가해성 변론을 '선택' 했다 칩시다. 그래도 '난 불법을 저지르지는 않았어' 라고 자위하며 당당해선 안 되죠. 
 
법조윤리 위반은 아닐지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허용선은 진작에 넘었습니다. 타인의 인권을 짓밟고 그것을 수단화한 행위는 무도한 사익 추구일 뿐 마땅한 직업 활동으로 인정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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