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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토마토칼럼) 핵실험 10년사의 진실

2016-01-13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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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밖에 길이 없다. ‘또 김정은 일당과 대화하란 얘기냐’ 묻는다면 ‘그럼 아직도 제재가 답이라고 보느냐’ 되물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제재를 받으면 핵실험을 했다. 협상이 열리면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핵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걸음을 늦추거나 멈췄고, 완전한 폐기를 목표로 하는 6자회담에 나왔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 이후 1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진실은 명백하다.
 
1차 핵실험은 마카오의 한 은행에 있는 북한계좌 동결이라는 제재가 불씨였다. 미국은 2005년 9·19공동성명이라는 북핵 해결의 역사적인 로드맵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그 제재를 개시했다. 북한은 1년 정도 반발하다가 결국 첫 핵실험으로 가버렸다.
 
화들짝 놀란 미국은 대화를 택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증오하던 부시 정부였지만 핵실험 2개월 후 6자회담을 열었고, 이듬해 2월 핵시설 폐쇄를 약속한 2·13합의를 채택했다. 얼마 후 북한계좌 동결을 풀어주자 핵시설 불능화를 약속한 10·3합의도 성사됐다. 그 다음날 10·4남북정상선언을 통해서도 북한은 6자회담 합의 이행을 다짐했다. 북한은 이듬해인 2008년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고, 미국에 핵개발 서류 뭉치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미국에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지 4개월 만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미국은 한국(MB정부)의 요구에 따라 제재 일변도의 대응으로 치달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7년 동안은 제재와 핵실험과 장거리로켓 발사의 악순환이었다. 2차 핵실험과 유엔 안보리 1874호 제재(2009년) → 북한 우라늄시설 공개(2010년)와 장거리로켓 발사(2012년) → 안보리 2087호 제재와 3차 핵실험, 안보리 추가제재(2013년) → 협상 단절과 4차 핵실험…
 
협상을 하던 때도 북한은 종종 떼를 썼고, 약속 이행을 지연시켰다. 때론 뒤에서 몰래 배신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핵을 꼭 없애겠다는 한·미의 의지만 확실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북한의 못된 점을 내세우며 제재만을 강조한다면 결과는 5차, 6차 핵실험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이번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이전과는 달라야 할 것”이라며 제재 강화를 주장했다. 그건 달라진 대응이 아니다. 실패로 끝난다는 사실이 수차례 입증된 길이다. 북핵을 진짜 해결하려면 정말 달라야 한다. 이번만큼은 협상에도 기회를 줘보자.
 
황준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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