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포도당과 과당은 영양성분표상 똑같은 칼로리를 지닌 당분으로 보이지만, 우리 뇌는 이를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고 반응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히 현대인의 식단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액상과당(고과당콘시럽·HFCS)이 왜 그토록 강한 식욕과 중독성을 유발하는지 그 신경학적 기전이 밝혀진 것입니다.
미국 모넬 화학감각연구소(Monell Chemical Senses Center) 연구팀은 과당과 포도당이 장과 뇌를 잇는(gut-brain) 서로 다른 생물학적 경로를 통해 소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있는 학술지 뉴런(Neuron)에 게재됐습니다.
식욕 억제하는 포도당, 효과 미미한 과당
연구팀은 당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과당과 포도당에 노출된 후의 신경 활동을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과당은 장 호르몬의 일종인 'PYY' 수치를 높이고 미주신경(vagus nerve)을 통해 신호를 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식욕을 유발하는 핵심 뇌 세포인 'AgRP 뉴런(식욕 촉진 신경세포)'의 활동을 소폭 감소시키는 데 그쳤습니다. 연구진이 이 신경 경로를 차단하자 과당은 더 이상 식욕 세포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포도당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포도당은 과당이 이용하는 PYY-미주신경 경로에 의존하지 않고, AgRP 뉴런의 활동을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억제했습니다. 포도당을 섭취했을 때 뇌의 굶주림 관련 신호가 훨씬 더 극적으로 줄어들며 뚜렷한 포만감을 유발한 것입니다.
'달콤한 유혹' 액상과당의 비밀
포도당과 과당은 단기적인 음식 섭취량에서는 비슷한 결과를 냈지만, 쥐들은 점차 각 당분이 식욕 관련 뉴런(AgRP)을 억제하는 정도에 따라 선호도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연구팀이 과당과 포도당의 혼합물인 액상과당(HFCS)을 투여했을 때 쥐들은 압도적인 선호도를 보였습니다. 액상과당은 과당 단독일 때보다 식욕 촉진 뉴런을 더 강하게 자극하여, 뇌가 해당 음식을 더 매력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모넬 연구소의 수석 저자인 앰버 알하데프(Amber Alhadeff) 박사는 "이러한 강력한 신경학적 반응이 액상과당이 들어간 음료와 가공식품이 왜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라며 "이번 연구는 액상과당이 다량 함유된 현대인의 식단이 식욕 관련 신경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칼로리 중심의 기존 통념 뒤집어
이번 연구는 식욕을 조절하는 뇌 뉴런이 단순히 ‘칼로리의 총량’만을 추적할 것이라는 의학계의 오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칼로리의 출처와 상관없이 에너지만 채워지면 포만감을 느낄 것이라는 기존 가설과 달리, 우리 뇌는 당의 종류를 명확히 구별하고 각각 다른 경로로 반응하고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연구팀은 "과당과 포도당이 동일한 에너지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뇌가 이를 다르게 처리한다는 사실은 체내 영양소 감지 시스템의 복잡성을 보여준다"라며 "단순 당이라 할지라도 당의 종류에 따라 장과 뇌, 그리고 인간의 식습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식탁 점령한 액상과당, 어디에 들어있나
이처럼 뇌의 식욕 억제 시스템을 교란해 과식을 유발할 수 있는 액상과당은 설탕보다 단맛이 강하고 액체 상태라 혼합이 쉬우며 원가도 저렴합니다. 이 때문에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가공식품에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음료류입니다. 콜라, 사이다 등 일반 탄산음료는 물론이고, '100% 착즙'이 아닌 시판 과일 음료나 에이드, 스포츠 음료에도 단맛을 내기 위해 다량 포함됩니다.
단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 짠맛 위주의 소스나 조미료에도 의외로 액상과당이 많이 숨어있습니다. 케첩이나 바비큐 소스, 시판 불고기 양념장, 떡볶이 소스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지방 함량을 낮춘 '저지방(Low-fat)' 샐러드드레싱의 경우, 줄어든 지방의 풍미를 보완하기 위해 액상과당을 더 첨가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 밖에도 양산형 식빵이나 햄버거 빵은 수분을 유지하고 먹음직스러운 갈색빛(갈변 현상)을 내기 위해 액상과당을 첨가하며,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해야 하는 아이스크림이나 과일 시럽이 깔린 떠먹는 요구르트, 과일 통조림 등 제과·제빵·유제품 전반에 걸쳐 쓰이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액상과당 섭취를 줄이려면 장을 볼 때 제품 뒷면의 원재료명을 꼼꼼히 살피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영양성분표에 '액상과당', '고과당콘시럽', '기타과당', '요리당', '옥수수시럽(콘시럽)' 등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다면 섭취량 조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연구진은 과당과 포도당이 칼로리 함량은 같지만, 서로 다른 생물학적 경로를 통해 뇌와 소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의 식습관에 깊이 파고든 액상과당이 함유된 음식과 음료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진=Gemini생성)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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