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진희 기자] 정부의 가계대출 총량관리 방식이 오는 10월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금융회사별 대출 총량을 제한하는 방식이 서민·실수요자의 금융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 시장 상황에 따라 목표를 조였다 풀고, 계속해서 보완해 나가는 땜질식 정책이 반복될 경우 정책 신뢰도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경직적 총량관리에 실수요자도 '발동동'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98.7%를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말 88.6%를 기록했습니다. 점진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G20 평균인 60%대를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정부는 지난 4월 가계부채 비율을 2030년까지 GDP 대비 80% 수준으로 낮춘다는 목표를 세우고 올해 가계대출 총량관리 목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전망치의 절반 이하인 1.5%로 설정했습니다. 정책대출 비중을 현행 30%에서 20%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다주택자의 대출 만기 연장을 제한하는 등 강도 높은 관리에도 나섰습니다.
하지만 경직적인 총량관리와 단기적인 대출 규제만으로 가계부채의 구조적 위험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실수요자들의 피해도 큰 상황입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2026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통해 이런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가장 먼저 지목되는 것은 총량 목표를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서민·실수요자의 금융 소외입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5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를 앞두고 주택 매매 거래가 늘어난 데다 주식 투자 관련 대출 수요까지 맞물리면서 가계대출 증가 폭이 확대됐습니다.
주요 은행에 할당된 연간 총량 목표치의 소진 속도가 빨라지면서 은행들은 신규 대출 한도와 취급 조건을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세자금이나 실거주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이 필요한 차주까지 대출 문턱이 높아지는 이른바 '대출 절벽'이 나타났습니다.
서울 시내의 아파트. (사진=뉴시스)
특히 주택 거래는 계약부터 잔금을 치르기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대출 공급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실수요자의 자금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투기성 대출을 억제하기 위한 총량 규제가 오히려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은행권에서 밀려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 역시 구조적인 문제로 꼽힙니다. 총량 규제 아래 은행들이 한정된 대출 여력을 상환 능력이 높은 우량 차주에게 우선 배분하거나 가산금리를 높여 수요를 억제할 경우,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차주는 더 높은 금리를 부담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는 이자 부담 증가와 한계차주의 부실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은 장기 평균을 밑돌고 있지만, 상환능력이 취약한 차주의 비중이 6.7%로 꾸준히 늘었습니다. 1년 이상 장기 연체 취약차주 비중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질적 지표가 뒷걸음질 치고 있는 셈입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거주 목적인 생애 최초나 젊은층 중심으로 대출이 나가야 하는데, 실수요자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규제를 풀었을 때 조금 더 안전한 쪽에 주고 싶어 해, 그런 측면에서는 미스매치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락가락·땜질 정책 시험대
실수요자 대출 절벽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은 이달 13일 가계대출 관리 목표를 손봤습니다.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기존 1.5%에서 3%로 두 배 높이고, 이주비·중도금·잔금대출 등 주택공급과 관련된 대출은 금융회사별 일반적인 총량관리 목표와 구분해 별도로 관리하기로 한 겁니다.
다만 목표치가 높아졌을 뿐 가계대출을 일정한 증가율 안에서 관리하는 총량관리 기조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은행들은 여전히 정해진 목표 안에서 대출을 공급해야 하는 만큼 당장의 대출 여력은 늘어날 수 있어도, 총량관리에서 비롯되는 금융 접근성 문제까지 근본적으로 해소되진 않은 상태입니다. 총량을 완화한다고 해서 늘어난 대출 여력이 곧바로 실수요자에게 돌아간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입니다. 정부는 가계부채의 안정적인 감축을 위해 설정한 목표를 불과 수개월 만에 조정했습니다. 총량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목표를 조정하거나 예외를 두는 방식이 반복될 경우, 시장에서는 규제가 언제 다시 강화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이것이 오히려 대출 수요를 앞당기는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입법조사처는 주택자금 공급 등을 위해 총량관리 목표를 반복적으로 수정할 경우 정부가 내세운 '2030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80%' 로드맵에 차질이 생길 뿐 아니라 정책 신뢰도도 함께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경직적인 총량 목표를 먼저 제시한 뒤 부작용이 발생하면 예외를 두거나 목표치를 다시 수정하는 '땜질식'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허 교수는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만으로 시장을 관리하기보다 주택 공급이나 시장의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이후 시장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고, 해당 목표를 일정 기간 일관되게 유지해야 정책의 신뢰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올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가계대출 관리 체계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입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 한 관계자는 "아직 국감 준비 단계라 구체적인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가계부채 관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이번 국감에서도 관련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진희 기자 lj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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