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의심계좌 차단했더니…정상 고객은 '소명 전쟁'
2026-09-22 15:34:12 2026-09-23 07:59:18
 
[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를 막기 위한 금융권의 계좌 지급정지와 거래 제한이 강화되면서 사기 피해자나 의심거래로 분류된 고객이 장기간 금융거래에 불편을 겪는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취지지만, 실제 사기 가담 여부와 관계없이 고객이 직접 정상 거래임을 소명해야 하는 구조라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상 고객도 계좌 '먹통'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에서 보이스피싱 의심거래를 이유로 고객 계좌의 지급이 정지되거나 전자금융거래가 제한되는 사례가 발생했습니다.
 
고객 A씨는 수년 전 한 은행을 직접 방문해 미성년 자녀 명의의 계좌를 개설한 뒤 해당 계좌를 이용해 왔습니다. A씨는 자녀 명의 계좌로 돈을 받은 뒤 자신의 계좌로 생활비 등을 이체하는 방식으로 거래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수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수십수백 차례 자금을 이체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금요일 오후 자신의 계좌로 돈을 이체하려던 순간 갑자기 거래가 제한됐습니다. 
 
A씨는 "몇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수없이 거래했는데 갑자기 지급정지가 됐다"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말 동안 계좌를 사용할 수 없고 월요일에 자녀까지 데리고 은행에 방문해 해제해야 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특히 지급정지가 금요일 오후 이뤄지면서 주말 동안 계좌를 통한 이체와 결제 등이 제한돼 생활비 사용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습니다. 
 
다른 은행 고객 B씨는 올해 3월 주식투자 사기를 당하면서 보이스피싱 의심계좌로 분류된 새마을금고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가 자신의 계좌까지 거래정지되는 일을 겪었는데요. 
 
B씨에 따르면 당시 해당 은행은 B씨 계좌의 거래를 정지했고, B씨는 은행을 직접 방문해 자신이 사기 피해자라는 내용을 소명한 뒤 자신의 계좌에 대한 거래정지를 해제했습니다. 이후 B씨는 상대방 계좌에 대해서도 거래정지를 신청했고, 상대방이 직접 연락해 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B씨는 다음 날 상대방과 만나 새마을금고에서 거래정지를 해제한 뒤 상대방 계좌를 해지하고 피해금을 돌려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피해금을 돌려받은 이후 B씨에게 다시 거래 제한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이번에는 특정 금융회사 계좌만이 아니라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전자금융거래가 제한됐다는 게 B씨의 주장입니다. B씨는 사기 의심계좌 명의인으로부터 피해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다시 이상거래로 분류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B씨는 "보이스피싱 의심계좌에 잘못 입금한 돈을 돌려받은 것인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1000원, 2000원 등 소액 거래가 대부분인 일반적인 계좌인데 거래 내역을 조금만 확인해도 정상적인 계좌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B씨는 은행을 찾아가 관련 내용을 소명했지만 이의제기 절차를 거쳐 거래 제한이 풀리기까지 최소 2주가량 걸릴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는데요. 이 기간 금융거래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는 설명에 강하게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은행 측이 경찰을 부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강준현·조인철 민주당 의원은 금융회사의 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한 보이스피싱 피해에 대해 금융회사가 피해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으며 두 개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데요.
 
조인철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이 정무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되다가 의원실 법안 차례가 오기 전에 회의가 끝나 현재까지 추가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국정감사가 끝나고 법안소위가 다시 열리면 재논의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보이스피싱 의심거래로 정상적인 계좌까지 거래가 정지된 상황을 형상화한 이미지. (사진=제미나이)
 
주말 해제 창구 필요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신속한 계좌 지급정지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상 고객의 금융거래가 장기간 제한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주말 대응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이나 금융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의심계좌를 신속하게 지급정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금요일이나 주말에 계좌가 묶일 경우 고객이 월요일까지 금융거래를 전혀 하지 못하는 불편이 발생할 수 있다"며 "보이스피싱이나 사기 의심거래와 관련한 신고와 민원을 주말에도 접수하고 상담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담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계좌가 지급정지됐을 경우 주말이라도 전화나 비대면 방식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거래 제한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며 "현재 고객센터가 주말에 운영되지 않는 만큼 보이스피싱 관련 지급정지와 같은 사안을 전담해 대응하는 창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일부 보이스피싱 조직은 소액을 의도적으로 특정 계좌에 입금해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시키는 방식도 활용하는데, 이런 사례까지 고려하면 주말에도 관련 신고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며 은행 입장에서는 전담 인력을 운영하는 데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선뜻 확대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보이스피싱 차단은 신속성이 중요하지만 정상 고객의 금융거래를 장기간 제한해서는 안되기에, 선제적 일시정지, 신속한 사실확인, 정상계좌 즉시 해제의 3단계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단순히 하나의 의심 신호만으로 장기간 거래를 제한하기보다 거래 규모와 평소 거래패턴, 입출금 상대방 등 여러 정보를 종합해 위험도를 차등화하고, 고위험 계좌는 즉시 정지하되 중위험 계좌에는 이체한도 축소나 추가 본인확인 등 단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정상 고객이 지급정지를 당했을 경우 24시간 이내 이의제기와 본인확인이 가능하도록 하고 정상 거래로 확인되면 즉시 제한을 해제해야 한다"면서 "모든 의심계좌를 장기간 묶는 방식에서 벗어나 AI 등을 활용해 위험도를 정밀하게 판단하고 고위험 거래를 신속히 차단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ATM 기기. (사진=연합뉴스)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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