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어릴 적 명절이나 집안에 경사가 생겨 뜻밖의 용돈이 생기면 부모에게 맡기곤 했다. 잠시 맡아둔 후 훗날 필요한 데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쌍팔년도 구시대의 경제 교육에서 그 저금통은 종종 엄마의 쌈짓돈으로 변했다. 차곡차곡 모아 조립식 장난감을 사겠다는 어린 마음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달라며 따져 물으면 혼이 나서야 정리가 됐다.
돌이켜보면 그 돈은 내 손을 스쳐 갔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의 공동 저금통이기도 했다. 가물가물하지만 평소 저녁상보다 풍성한 찬을 기억한다. 맛난 저녁상은 일 마치고 퇴근한 아버지의 웃음꽃이었고 가족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뜻밖의 목돈이 들어오면 미래를 위해 ‘공동의 저금통’을 파려 한다. 하지만 그 저금통을 누가 관리하고 어떤 규칙으로 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 역시 일정 부분 그렇지 않을까. 반도체 호황 등으로 발생한 추가 세수를 활용해 인공지능(AI), 청년, 지방 발전 등 국가적 과제에 선제적으로 투자하자는 방향성에는 깊이 공감한다.
저출생, 지역 소멸의 문명사적 전환기 앞에 국가·지방이 함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당위엔 이견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투자의 목적’이 아닌 ‘돈을 거두고 쓰는 방식’엔 의문이 제기된다.
그중 지방교부세는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지방교부세율 19.24%를 유지하되 미래대응기금 전입액을 교부세 산정 대상 내국세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지방교부세는 중앙·지방이 상호 위험을 공유하는 ‘리스크 공유’ 기제이자,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한 ‘교정적 이전지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방교부세는 단순 이전금이 아닌 지방정부가 지역 필요에 따라 재정을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일반재원이다. 현행 방식대로 추가 세수를 기금으로 먼저 떼어내 지방교부세의 모수를 줄이는 구조는 경제학적으로 ‘지방의 자율적 재정 여력’을 대폭 축소시킨다.
중앙이 돈을 모아 지방에 다시 나눠 주는 방식은 겉으로 지원이나 실상은 지방을 피동적 수혜자로 전락시키는 ‘재정의 중앙집권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단순한 회계 기술을 부리기보단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의 배분 방식을 바꾸는 문제다. 즉, 재정분권의 관점에서 따져봐야 할 이유다.
물론 지방정부도 세수 호황기 무분별하게 경상지출을 늘리던 과거의 관성을 버려야 한다. 세수가 늘었을 때 자율적으로 적립하고 불황에 대비하는 재정 책임성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중앙정부의 개입 명분을 제공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중앙의 독단적 집행이나 지방의 무책임한 요구가 아닌 재정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재설계하는 일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 과제에서 ‘지방재정 확충으로 자치재정권 확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제시했다. 미래대응기금 역시 이 원칙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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