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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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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하얀 벽

2024-03-12 19:54

조회수 :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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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하얀 벽을 마주하고 달립니다. 흰 메모장의 노란 커서가 신호등처럼 깜박이고, 달아오른 손가락은 키보드를 가속 페달처럼 밟습니다. 연료는 '이유'와 '관심'과 '의심'과 '애정'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죠. 연료가 충만하면 글씨와 손씨들의 만찬이 열립니다. 그렇지 않은 날엔 손가락이 굶어 움직이지 못합니다. 굶은 손가락은 뼈가 앙상한 말이 되어 터벅터벅 걷다가 쓰러집니다.
 
12일 서울의 한 카페 벽. (사진=이범종 기자)
 
오늘도 글씨들의 만찬이 열린다기에 마차에 탔습니다. 마차를 끄는 말은 가지런히 서야 합니다. 키보드 위에 선 열 마리 말의 고삐는, 목적지와 가야 할 이유가 분명치 않을 때 풀어집니다. 하지만 주인에게도 막연한 여정에선 쉽게 고삐를 죌 수 없습니다. 말들이 알아서 마차를 끌어주지도 않습니다. 이럴 때 말과 말이 뒤엉켜 줄줄이 쓰러집니다. 하얀 벽은 막다른 현실의 벽이 되어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 벽에 부딪힌 마차도 온전할 리 없습니다. 지금 탄 마차의 안전이 불안합니다.
 
환절기 탓인지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일 다시 하얀 벽을 마주하려 합니다. 이 벽은 누군가 맞들어주는 백지장일 수도 있고, 인생이란 여정의 쪽지 시험지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저처럼 하얀 벽 앞에 섰다면 너무 외로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늘 옆을 보니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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