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결혼식 사회를 맡았습니다. 그동안 진행했던 사회보다 이번 결혼식이 꽤나 부담스러웠는데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전반적인 결혼식 문화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식 기념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결혼식 전 신부 측은 사회를 보기로 한 제게 직접 전화해 우려와 당부를 거듭했습니다. 결혼식 전날까지 깔끔한 진행을 당부 받았고, 결혼식 당일에도 신랑은 제게 슬프지 않은 '정갈하고 밝은 느낌'의 진행을 추가로 부탁했습니다. 사회를 보는 일이라면 자신이 있었던 저이지만 요청이 더해질수록 부담이 생겨났습니다.
웨딩업계에 전반적인 흐름을 물어보니 이 부부는 '양반'에 속했습니다. 최근 예비부부들 사이에서는 결혼식을 단순한 예식을 넘어, 자신들만의 '기획물'로 생각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그저 말 잘하는 사람이 사회를 맡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성평등 의식이 확산하면서 여성 사회자를 선호하는 경향도 생겨나고 있고, 짓궂고 재미있는 사회보다는 부부를 돋보이게 만들어 줄 사회자를 부부 취향에 맞게 선택하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이름 좀 날렸던 레크리에이션 쪽 출신의 인물들은 더 이상 결혼식에서 별다른 인기가 없다고 하네요. 관객들을 위한 재미보다는 부부의 기획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신부는 특정 배경음악이 나온 뒤 몇 초 후에 멘트를 해달라는 세세한 당부까지 한다고 합니다. 발걸음마다 해야 할 멘트를 일일이 정해주는 식이죠. 자신들이 만난 날, 결혼하기까지 걸린 기간, 부모님들의 결혼기념일까지 일일이 결혼식에서 언급해달라는 요청도 있다고 합니다.
이쯤 되니 웨딩업계의 새로운 다크호스도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비부부들의 요구에 맞춰 그들이 원하는 선택지를 다양하게 풀패키지로 제공하는 업체가 나왔습니다. 가령, 예비부부가 원하는 분위기의 배경음악을 선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멘트 역시 여러 선택지 중 고를 수 있게 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예비부부의 첫 만남부터의 사랑이야기를 들어 해당 내용을 결혼식 사회 전반에 녹여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식입니다. 일종의 '커스터마이징' 결혼식입니다. 대신 이 풀패키지를 제공하는 업체는 남들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가격을 받습니다. 가격은 비싸도 예비부부들의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이 업체의 스케줄을 꽉 차있다고 해요.
결혼식이 점점 꼼꼼해지고 까다로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부부가 새 출발을 하는 중요한 날이니 이해가 되다가도, 관객들을 고려하는 마음은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결혼식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고, 대개 주말 귀한 시간을 내어서 방문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주는 간결함과 재미요소도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부부만의 사소하고 세세한 추억, 여러 날짜 정보들의 향연, 수많은 기획 지침이 과연 관객들에게 어떻게 닿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