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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혜

비 내리는 영동교

2015-08-27 11:12

조회수 : 3,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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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전라남도 장흥의 외할머니 댁에 며칠간 다녀오곤 했다. 외할머니 댁에서는 월요일 저녁마다 ‘가요무대’를 틀어 놓는데, 언젠가 나도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서 따라 불렀다. 주현미가 부른 ‘비 내리는 영동교’였다.
 
“밤 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
 
내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걸 보시고 외할머니는 “아가, 니가 저 노래를 으찌께 안다냐?”고 하셨다. “몰라요. 그냥 알아요.” 했더니 외할머니는 껄껄 웃으시면서 “하이고, 누가 서울 놈 아니라고 할까 서울 노래는 기가 막히게 불러브네잉” 한마디 덧붙이는 것이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며칠째 더운 날씨만 계속되고 비는 오지 않던 어느 밤이었다. 술을 마시다 보니까 버스며 지하철은 다 끊겼다. 별 수 없이 또 집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음악을 들으며 걷기 시작했는데, 마침 ‘비 내리는 영동교’가 흘러 나왔다. 술기운에 그 노래만 반복되게 해 놓고선 흥얼거리며 집까지 걸었다.
 
 
 
주현미. 캡처/바람아시아
 
다음날 신문에는 소양강댐의 수위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기사들이 꽤 비중 있게 실렸다. 지역 주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댐의 물로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조만간 할머니랑 통화 할 때 장흥은 비 안와서 괜찮냐고 여쭤봐 줘”했다. 엄마는 “안 그래도 엊그제 전화 했는데 할머니 엄청 걱정하더라”고 했다. “적당히 더운 날씨에 비도 안 오니까 술 먹고 걷기 좋네”라고 친구들과 떠들던 내가 기억났다. 옛날 노래 흥얼거리며 술 취해 걷고 있을 때, 외할머니는 다음날 비가 오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을 걸 상상하니까 민망스러운 기분이었다. 할머니가 말한 ‘서울 노래’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매번 해야지 하면서도 안부 전화 드리는 걸 깜빡한다. ‘서울 노래’가 머릿속에 맴돌았던 덕분인지 며칠 전 용케 장흥에 전화를 걸었다. 외할머니는 TV를 보면서 체조를 하고 계시던 중이이라 했다. 농사로 쌓인 그 날의 피로를 풀고,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기 위한 외할머니의 하루 중 마지막 일과다.
 
“할머니, 이제 비 좀 오니까 괜찮죠?”라고 물으니까, “오야, 인제는 되았다.”고 했다. 술 취해 노래 흥얼거리며 걷던 밤이 또 생각나서, 괜히 “올해는 농약 뿌리고 풀 깎으러 꼭 갈게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래라잉, 이제 나는 잘란다.”하고 전화를 끊었다. 뱉어놓고 생각 해 보니까 군대에 다녀온 뒤로는 농삿일을 도와드린 기억도 없다. 서울과 장흥이 떨어진 거리만큼의 무관심함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 무관심함과 비슷한 정도의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조휴연 객원기자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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