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정부가 보이스피싱과 불법사금융 등 민생 침해 금융범죄 척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서민금융의 최전선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은행·금융지주·금융투자·보험사·여전사·저축은행 등 전체 금융권의 책무구조도 마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법인보험대리점(GA)과 대부업, 상호금융(농협·수협·신협·새마을금고)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입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다음달 2일까지 △자산 5조원 미만의 금융투자사와 보험사 △자산 5조원 이상 및 운용자산 20조원 미만의 여신전문금융사 △자산 7000억원 이상의 상호저축은행을 상대로 책무구조도 제출을 마감합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또는 금융회사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의 집행과 운영에 대한 법령상 책임을 임원·직책별로 배분해 관리 조치를 이행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금융권에서 금융사고와 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경영진에게 강도 높은 책임을 묻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이 2024년 1월2일 공표돼 2024년 7월3일 시행됨에 따라 금융업권별 책무구조도 도입이 이뤄졌습니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 안착을 위해 세부 업권과 자산 규모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도입 시기를 조정했습니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지난해 1월까지 선제적으로 도입을 마쳤으며 이어 △자산 5조원 이상 및 운용자산 20조원 이상의 종합금융사 △자산 5조원 이상의 보험사까지 같은 해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마련해 2단계 도입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는 7월 3단계 도입으로 전 금융권의 책무구조도 규제가 확산되며, 2027년 7월2일까지 △자산 5조원 이하 여전사 △자산 7000억원 미만 저축은행까지 4단계 도입을 마쳐 규제망이 완성됩니다.
'비금융회사' 대부업·GA·상호금융 규제 예외
개정 지배구조법에 규정된 책무구조도 의무화가 본격화됐지만, 정작 서민금융 피해가 집중되는 핵심 업권들은 개별 법률의 한계에 가로막혀 규제 테두리 밖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이 규제망을 비껴간 것은 지배구조법상 '금융회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독립 단행법이 없는 GA는 기존 보험업법 하위 규정(시행령과 감독규정)에 일부 조항만 얹혀 있으며 대부업체는 대부업법, 상호금융은 소관 부처별 개별법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지배구조법 개정만으로는 이들에게 일관된 책무구조도 의무를 강제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뚜렷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규제 사각지대 속에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금융 피해가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업권과 상호금융권에서도 내부통제 미비로 인한 정보 유출과 금융사고가 반복됐습니다. GA는 2025년 3월 미래에셋금융서비스와 PS파인서비스 소속 설계사 97명이 1406억원 규모의 유사수신 자금 모집에 가담한 사실이 적발됐고, 같은 해 5월에는 유퍼스트보험마케팅과 하나금융파인드에서 총 1107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습니다. 상호금융권 역시 최근 5년간 263건, 1854억원의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등 업권별 내부통제 취약성이 드러났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만약 이들 업권이 은행이나 대형 증권사처럼 책무구조도 도입 대상이었다면, 지점장이나 최고경영자(CEO), 중앙회장이 '관리 의무 소홀'로 단번에 직무정지 등 사법 처벌 수준의 중징계를 받았을 사안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재명정부 '민생범죄' 근절 한계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법정 허용치를 초과하는 불법 대부는 원금과 이자 모두 원천 무효"라며 서민 목줄을 죄는 약탈적 사금융 척결에 행정력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같은 민생 침해 범죄 소탕은 정보 유출 차단과 불법 대출 통제가 핵심이지만, 정작 불법 커넥션 사고가 빈발하는 핵심 업권에 대한 직접적인 내부통제 조항은 빠진 상태입니다.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배경은 대부업권 등에 고강도 규제를 강제할 경우, 내부통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합법 업체들이 줄폐업하면서 저신용 차주들이 미등록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풍선효과'가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보험업권 역시 규제의 비대칭성이 심각합니다. 당국은 대형 GA를 직접 제재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한 원수 보험사에 제휴 GA의 사고 관리 의무를 우회 전가하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대형 GA를 직접 제재할 법적 근거가 미비하자, GA의 불완전판매나 금융사고 발생 시 업무를 위탁한 원수보험사 임원에게 책임을 묻는 '제3자 리스크 관리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습니다.
심지어 GA의 판매리스크 평가 결과까지 보험사 임원의 책무구조도에 강제 편입시키면서, GA의 무리한 승환 계약과 공격적인 고객 DB 영업 결과로 터진 사고 책임을 규제를 철저히 준수한 원수사가 독박 쓰는 '책임의 불균형'을 낳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서민금융의 주축인 상호금융권은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이 규제 도입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신협(금융위원회)을 제외한 농협(농림축산식품부), 수협(해양수산부), 새마을금고(행정안전부) 등은 소관 부처가 제각각 분산돼 있어 금융당국 주도의 지배구조법 개정만으로는 책무구조도를 강제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타 부처들이 고유의 감독권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면서, 지역 조합들의 횡령과 부실 대출 사고가 반복되는 와중에도 상호금융권만 홀로 내부통제 의무화 궤도에서 이탈해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불법 사금융과 민생 범죄를 소탕하겠다고 소리쳐도, 규제망에 구멍이 있으면 범죄 자금과 브로커들은 그쪽으로 몰리기 마련"이라며 "정작 똑같이 서민을 상대로 대출을 굴리고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대형 GA나 대부업 등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에서 쏙 빠져나간 구조라 규제 형평성 측면에서도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동대문경찰서가 '나체 추심' 불법대부업체 조직 11명 검거 브리핑에서 공개한 증거물품. (사진=뉴시스)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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