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사무금융노조) 전국협동조합본부가 농협중앙회에 이른바 '안전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하나로마트 지게차 사망 사건을 계기로 건설업권의 안전보건관리비 적립 방식인 요율제 원리를 벤치마킹해 중앙회 차원의 안전예산 편성·집행에 대한 가이드라인(모범 준칙)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노조, 제도개선 요구안 중앙회에 전달
4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협동조합 노조와 농협중앙회는 오는 7일 2차 노사 협상 자리에서 노조가 사전에 전달한 '안전한 농·축협 전환을 위한 제도개선 요구안'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앞서 노조는 지난달 초 1차 노사 협상에서 제주 하귀농협 하나로마트 지게차 노동자 사망사고를 계기로 중앙회의 노동안전 관리 책임을 제기하며 이번 요구안을 제출했습니다.
<뉴스토마토>가 단독 입수한 요구안에 따르면 노조는 △중대재해 예방 △폭염기·혹한기 옥외작업 안전 △우시장 등 가축에 의한 안전사고 예방 △감정노동자 보호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대응 △안전예산 편성·집행 기준 마련 등 6가지 항목의 가이드라인 지정을 촉구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안전예산 편성과 안전예산 집행의 기준 마련’은 노조가 최초로 제안하는 협상안으로 가장 주목됩니다. 앞선 기자회견에서는 최소 안전예산 하한선 마련, 표준 예산 과목 지정, 집행 투명성과 노동자 참여 확보 정도만 알려졌었는데요.
구체적으론 산업안전보건법 제72조에 따라 건설업에서 발주자가 공사금액의 일정 비율을 안전보건관리비로 계상하는 요율제 원리를 참고해 조합별 규모·인원에 따라 차등화된 최소 안전예산 비율과 금액을 확정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전국 농·축협은 개별 법인이라 지점별로 직원 수나 매출 규모가 천차만별이라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예산과 관련한 의무를 피해 가는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입니다.
요구안은 또한 예산만 세우고 쓰지 않는 편법 차단을 위해 중앙회 감사 항목에 안전예산 편성과 실제 집행률을 명시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조합별 안전예산 편성 및 집행 현황도 정기 경영공시에 포함해 조합원과 노조에 공개하고, 미집행되거나 이월된 안전예산에 대해서는 사유를 소명하고 차년도 예산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안전사고 수시발생...예산 필수"
노조는 안전예산 가이드라인 제정 외에 그동안 현장에서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구조적 문제점들을 바로잡기 위해 중앙회 차원의 강력한 지도·감독권을 행사할 것도 요청했습니다. 개별 법인임을 이유로 물리적 한계가 있다는 핑계에서 벗어나 농협중앙회가 가진 ‘조합감사위원회’의 감사권과 무이자 자금 지원권 등 강력한 지도 권한을 활용해 각 단위 농·축협을 통제하라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는 채용 시 각 조합이 한 글자도 바꾸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채용 준칙이나, 99% 이상 그대로 적용되는 모범안 형태 지침을 내리는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노조는 중앙회가 이러한 권한을 활용해 정관 및 관련 규정에 중대재해 발생 시 조합장의 처벌·징계 근거를 명시하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안전관리자가 타 업무를 겸직하지 않도록 전담화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장의 인력 부족이 초래하는 치명적 안전사고에 대한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최근 제주 하귀농협 참사의 원인이 된 지게차 등 하역운반기계 작업 시 신호수(유도자) 배치를 의무화하고 '2인 1조' 근무를 명문하는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노조 측은 "농·축협 현장은 육가공·폐수처리장의 질식 위험 작업이나 우시장 가축 취급, 비탈길 지게차 운행 등 고위험 작업이 수시로 발생한다"며 "1인 작업으로 인한 사고를 막으려면 인건비가 포함된 적정 인력 배치와 예산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노조가 농협중앙회를 상대로 종합적인 안전 대책을 요구하게 된 배경에는 수년째 반복되는 현장 사고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노조 내부의 깊은 자성이 배경이 됐습니다. 개별 농·축협 사업장은 제조업 중심의 공장 현장과 다르고, 안전사고와 관련해 강제화된 법 기준 조차 멀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노사 모두 안일하게 대응해 왔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최석주 사무금융노조 전국협동조합본부 사무국장은 "농·축협 기업은 제조업 사업장과 다르고 강제화된 법이 먼 이야기라고 노조 스스로도 안일하게 생각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그러나 제주 하귀농협 사고를 계기로 비정형 사업장의 중대재해 사각지대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해 데이터 파악부터 예산 강제화까지 담은 요구안을 마련했다"고 전했습니다.
안전실태 전면조사 요구도
노조는 안전예산 편성과 제도 개선의 출발점으로 농·축협 현장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도 요구했습니다. 최근 10년간 산재 발생 및 공상(공식 산재 대신 자체 보상) 처리 실태를 비롯해 고위험 사업장 안전관리 수준, 감정노동 피해, 안전예산·전담 인력 운영,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해 안전관리 기준을 마련하자는 취지입니다. 특히 산재 대신 공상 처리된 사고까지 포함한 기초 데이터를 확보해야 실효성 있는 안전예산 편성과 정책 설계가 가능하다는 게 노조의 입장입니다.
최 사무국장은 "농협중앙회가 각 조합의 안전 실태를 먼저 파악하고, 지도·감독 권한을 활용해 안전관리와 예산 편성을 강제하는 역할에 나서야 한다"면서 "현황 조사와 데이터 축적이 이뤄져야 향후 국회나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도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농협중앙회 사옥(왼쪽). (사진=농협중앙회, 신수정 기자, 챗GPT 합성)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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