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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봄이

'어찌하오리까'..박원순, 용산주민 만남에 견해차 확인만

통합개발 반대·찬성 주민, 상인들과 잇딴 현장 면담

2013-10-0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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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마토 최봄이기자] "입주 2년만에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새아파트가 개발로 묶였다. 이런 일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나. 지구지정 해제만 된다면 아파트를 팔아서 이 나라를 뜨고 싶은 심정이다."(통합개발에 반대하는 주민 이모씨)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어린 딸이 어둠 속에 울고 있었다. 딸은 '왜 우리집만 전기가 안 들어와'하며 울먹였다. 장사가 안 돼 생계유지가 어렵고 전기·가스마저 끊어져버린 점포들이 많다."(서부이촌동 상가 세입자 김모씨)
 
"7년동안 서울시와 코레일을 믿고 기다리면서 있는 돈 없는 돈으로 세금 내며 버텼다. 그런데 지금은 상권이 죽어 상가에 세입자도 안 들어오고 나는 실직한 상태다. 이런 상태라면 차라리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이 내 토지를 사라."(서부이촌동 통합개발을 주장하는 주민)
 
세 개의 회의실에 세 갈래의 절박한 목소리가 가득찼다. 지난 1일 늦은 저녁까지 이촌동 인근에서 진행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관련 주민간담회는 통합개발 반대주민과 찬성주민, 상가 세입자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직접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현직 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시장의 답변은 성난 민심을 다소 누그러뜨렸지만 주민 간 뚜렷한 입장차이와 명쾌한 출구전략의 부재를 재확인한 자리였다.
 
(사진=문정우 기자)
 
◇각기 다른 장소에서 그룹별로 진행된 간담회
 
주민간담회는 이날 저녁 6시30분부터 세 개 그룹으로 나뉘어 순차 진행됐다. 그룹별로 미리 정해진 20여명의 주민이 모여 차례로 발언한 뒤 박 시장이 일괄 답변하는 형식이었다. 그룹별 간담회 시간은 1시간으로 제한돼 문제 해법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는 어려웠다.
 
게다가 간담회의 일정과 장소를 보면 날카로운 신경전이나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시가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간담회는 서부이촌동이 아닌 효창동, 원효동에서 진행됐으며 그룹별 간담회 장소도 효창동 주민센터, 용산구 보건분소, 원효1동 주민센터 등 모두 다른 곳으로 정해졌다. 통합개발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이 충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 통합개발 반대측 대표단으로 참석한 한 주민은 '생각보다 방청석에 주민이 많지 않다'는 기자의 질문에 "시장이 처음으로 현장에서 주민간담회를 하는 만큼 시측에서 (충돌 가능성 등을 우려해)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 주민 "신속히 지구지정 해제"..朴 "수일 내 해제"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주로 7년 동안 겪어온 고통을 토로하고 서울시의 소극적인 문제해결 태도를 질타했다.
 
통합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서울시가 신속히 지구지정 해제를 고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가 지구지정 해제 방침을 밝혔음에도 코레일이 토지 소유권 이전등기를 신임 사장 취임 후로 미뤄 해제 일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반대측의 한 주민은 "사업이 청산절차에 들어가 있음에도 서울시는 코레일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며 "개발이익을 시행사가 독점하는 방식이 아닌 주민들이 주인이 되고 재정착할 수 있는 개발계획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사진=문정우 기자)
 
◇신용불량자 내몰린 상인들 "상권 다 죽여놓고.."
 
상인 대표단은 '기본적인 생계유지는 커녕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국제업무지구로 지정된 후 상권이 몰락해 장사를 할수록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는 것. 상인들은 연체 고지서를 내보이며 "전기세, 수도세, 가스요금도 밀린 처지"라고 토로했다.
 
시의 책임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떡집을 운영하는 상인 김모씨는 "이곳 상인들은 코레일을 상대로 장사하던 사람들이다. 만약 오세훈 전 시장이 개발지역으로 묶지 않았다면 코레일이 나갔을 때 (철도정비창, 서울우편집중국 등 기관이 나갔을 때) 떠났을 사람들이다. 시에서 상가입주권, 이주비 등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상인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고 비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상인은 "시는 이번 사업으로 법인세, 재산세, 취득세로 막대한 수입을 거둬들이는 등 최대 수혜자"라며 "이 재원으로 특별재난구역이라도 지정해 상인들에 대한 금융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찬성 주민들 "7년 동안 대출만 늘어..정상화가 해법"
 
통합개발 정상화를 주장하는 주민들은 조속한 사업 재개를 촉구했다. 국가기관인 서울시와 코레일만 믿고 기다렸는데 서울시의 섣부른 구역해제 발표로 상처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동의자모임 소속 한 주민은 "2010년이면 이사를 갈 것이라 생각하고 대출을 얻어 다른 곳에 집을 산 사람, 자식에게 준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시행사 부도 이후 은행대출은 막히고 재산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주민 56% 동의로 시작된 사업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서부이촌동은 서울 노른자위에 있지만 저녁이 되면 섬처럼 적막하고 문화적 혜택도 가장 못 받고 있다"고 개발 당위성을 강조했다.
 
◇박 시장 "용산에서 하룻밤 자며 주민 이야기 듣겠다"
 
(사진=문정우 기자)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박 시장은 "매맞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누가 시작한 사업이든 주민 고통의 최종 책임은 서울시에 있고 현직 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통합개발 반대측 주민과의 만남에서는 "지구지정 해제가 수일 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시장은 "토지대금도 완납된 상태이며 코레일 사장이 새로 왔다고 해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어렵고, 새로운 시행사가 나타날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며 "사업이 재개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구역해제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의지를 밝힌 것 외에 박 시장은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박 시장은 "당장 무엇을 해드리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다. 오늘 만남을 시작으로 주민과 자주 소통하고 대책을 함께 고민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1박2일'간 간담회도 약속했다. 박 시장은 "앞으로 현장을 찾아 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겠다. 하룻밤 자면서라도 여러분들이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할 때까지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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