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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협

(지속가능 바람)지하철-쿨(cool), 그 불편함에 대해

2016-04-11 06:00

조회수 : 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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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른 아침의 지하철, 몸 안 여기저기 숨어있던 신경질을 불러일으킨다.
1.
지하철을 기다리는 줄은 오늘도 길고, 역 안을 메운 사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난다. 고작 15분이지만 지하철 안에서 부대낄 생각을 하니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바닥만 발로 툭툭 차고 있을 때 지하철이 도착한다. 입을 크게 벌린 지하철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손잡이를 잡고 간신히 발을 디뎌 선다.
2.
군자역, 7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려는 사람들이 지하철 안 남아있는 공간 사이로 빽빽이 들어선다. 문이 닫힐 찰나, 20대 후반의 남자가 허둥지둥 사람들을 밀고 들어온다. 남자의 등에 매달린 각지고 큼직한 회색 가방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무심하게 그것을 쳐다봤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사람들은 가끔씩 흔들린다. 회색 가방도 따라 흔들린다. 제 존재감을 과시하듯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남자의 뒤에 서 있는 여자는 가방에 얼굴을 맞기도 하고, 어깨를 맞기도 한다. 몸을 뒤로 피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결국 여자는 남자를 향해 입을 연다.
죄송한데 가방이 계속 저를 쳐서 그런데요. 조금만 조심해 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적어도 미안하다는 뉘앙스의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출근 시간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되게 예민하게 구시네요.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미안할 것 없는 남자는 돌아서서 다 들리도록 투덜거린다. 여자는 화가 났는지 저기요-하며 말을 받는다. 그렇게 둘 사이의 언성이 높아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아침 지하철 바닥에 짜증스럽고 가시 돋친 말들이 쏟아진다.
짧지만 길었던 언쟁은 옆에 서있던 아주머니의 한 마디로 일단락되었다.
아가씨, 너무 예민하게 그러지 마. 학생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잖아.”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다들 아주머니의 말에 동의하는 걸까. 지하철 안이 조용해지고 여자는 다음 역에서 사라졌다.
3.
예민함에 대하여
여자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을까. 커다란 가방을 이리저리 참으며 목적지까지 불편하게 갔더라면 예민하다는 화살로부터 안전했을까. 정말로 이 해프닝이 모두 여자 때문에 생긴 것일까.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하고 (꽤나 정중하게) 상대에게 배려를 부탁한 것이 과연 예민한 일이었던 걸까.
지하철 안, 진짜 예민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타인의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고, 불편함에 대한 지적을 불쾌함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실로 예민한 것이 아닌가.
4.
불편함을 잘 삭히고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 이것을 우리는 쿨(cool)함이라 말하곤 한다.
이 사회에서 함은 권장 사항이다. 불편한 상황이 와도, 불편한 감정을 마주해도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시원한 듯 넘어가는 것. 실제로 하다란 말은 인간관계에서 칭찬의 일종이기도 해서 퍽 어감이 좋다. 나 자신도 한 사람이 되고 싶을 때가 참 많았다.
하단 말을 듣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술자리에서 오고가는 농담에 기분이 상할 때가 있어도 하게 웃어 넘겼다. 피해를 보는 일이 있어도 하게 넘어갔다. 그렇게 몸담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꽤나한 사람으로 통하게 되었다.
스스로 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서일까. 가끔 누군가가 던지는 농담에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나, 사소한 일들(나의 기준에서)에 불쾌함을 내비치는 사람들을 보며 쿨하지 못하다못마땅해 하곤 했다. 왜 굳이 화기애애하고 편안했던 분위기를 구기냐며 그들의 불편함을 불쾌히 여겼다.
결국 불편함에 대한 지적을 불쾌함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에서 나 또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하철 안, 그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도망치 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지하철 바깥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뺨에는 여전히 열꽃이 피어있었다.
 
이지윤 지속가능 바람저널리스트(www.baram.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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