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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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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범종입니다.
아버지 파멸 이어받은 '눈물의 딸' 레아

(이범종의 게임 읽기)디아블로⑦케인의 수양조카, 레아의 비극

2023-06-05 06:00

조회수 : 5,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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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생명이 하나의 세계를 살다 갑니다. 뱀은 온도의 세계를, 박쥐는 초음파의 세상을 삽니다. 반면 인간은 그저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사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펜을, 때로는 마우스를 들고 빅뱅에 버금가는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새 세상을 창조해냅니다. 그렇게 연극 무대가 세워지고 영화가 개봉됩니다. 거울과도 같은 세상으로 초대된 관객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웃고 웁니다. 응시하는 관객,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관객을 아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영화도 있습니다. 바로 게임입니다. 주체가 된 관객을 우리는 게이머라 부릅니다. 주말 아침 플레이스테이션을 켜는 아버지, 숙제 끝내고 컴퓨터 앞에 앉은 딸은 어느 세상 속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려는 걸까요. 새롭게 준비한 코너 '이범종의 게임 읽기'는 게임 속 세상을 든든히 받치고 있는 이 이야기들의 만듦새와 구조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첫 순서로 실시간 액션 롤 플레잉 게임의 기준을 세운 '디아블로'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게임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디아블로를 배경으로 만든 소설들을 참고해 기술합니다. (편집자주)
 
불타는 지옥의 악마 군대. (사진=블리자드)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드높은 천상과 불타는 지옥은 태초의 신 아누의 눈으로 불리는 '세계석'을 차지하려 '영원한 분쟁'을 벌입니다. 전쟁에 지친 천사와 악마들이 세계석을 빼돌려 낙원 '성역'을 만들었고, 여기서 혼혈종 '네팔렘'이 태어납니다. 성역의 운명을 둘러싸고 천사와 인간, 악마가 뒤엉켜 싸우기도 했지요.
 
이후 지옥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대악마 디아블로와 메피스토, 바알이 성역으로 나옵니다. 이에 대천사 티리엘과 마법학자 집단 호라드림이 세 악마를 영혼석에 가둬 각지에 묻습니다.
 
세월이 흘러 디아블로가 자신을 무찌른 영웅의 몸을 잠식해 부활했고, 다른 대악마들도 깨어납니다. 성역의 영웅들이 셋을 쓰러뜨렸지만, 성역의 근원인 세계석이 바알의 영혼에 오염됐습니다. 이에 대천사 티리엘이 세계석을 파괴했고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성역의 위태로운 운명을 직감한 마법학자 한 명이 종말을 막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2012년 출시 당시 서버 마비 사태가 일어난 화제작 '디아블로III'는, 헌신의 대가로 파멸을 맞은 여인의 슬픈 사연을 들려줍니다.
 
호라드림 마법학자 데커드 케인의 수양 조카 레아. (사진=블리자드)
 
'쿠르르르….' 종말의 첫 징조로 하늘에서 정의가 떨어집니다. 천사와 악마가 뒤엉켜 싸우는 와중에 갈라진 땅에서 혐오스런 악마가 일어나 입을 쩍 벌립니다.
 
"헉!" 악몽에서 깨어난 소녀가 아저씨를 찾습니다. 저 앞에 구부린 등 위로 반짝이는 두 눈이 고서 속 종말의 단서를 쫓고 있습니다. 마법학자 단체 호라드림의 수장 제레드 케인의 마지막 후손, 데커드 케인입니다.
 
케인은 세계석 파괴 이후 인류 종말을 막을 방법을 찾는 데 일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 곁을 지키는 수양 조카 '레아'는 그가 천사와 악마, 종말을 이야기 할 때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며 귀담아듣지 않았죠.
 
"만약 이 해석이 맞는다면, 지옥의 세력이 이미 움직인 셈이야. 세상에 어둠이 밀려온다고 알려야 해. 넌 내 말 믿지? 그렇지, 얘야?"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레아는 비에 섞여 떨어지는 대성당 지붕 조각을 불안하게 바라봅니다.
 
"시작…됐어…." 케인이 뚫린 지붕 너머로 날아오는 별을 보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자리를 뜨려는 찰나, 운석이 트리스트럼 대성당 바닥을 뚫고 케인을 데려갑니다.
 
트리스트럼 대성당으로 별이 떨어지고 있다. (사진=블리자드)
 
"인간만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자, 구 트리스트럼 근처 신 트리스트럼 외곽에서 망자들이 깨어났습니다. 네팔렘의 힘을 일깨운 야만용사와 성전사, 악마사냥꾼, 수도사, 강령술사, 부두술사, 마법사가 이 현상을 조사하러 각지에서 달려옵니다. 이들은 케인을 구하고 다시 깨어난 레오릭 왕을 무찌른 뒤, 운석이 떨어진 자리에 쓰러진 이방인도 찾습니다. 그와 함께 추락한 검 조각에 실마리가 있다고 본 일행은 고생 끝에 파편을 모두 모읍니다.
 
별이 떨어진 곳에 찾아가니, 별 대신 이방인이 누워있다. (사진=디아블로III 화면)
 
하지만 그 사이 마녀단의 수장 마그다가 케인의 집에서 검 조각을 합치라고 협박했고, 이에 굴하지 않은 케인에게 치명상을 입힙니다. 분노한 레아가 억눌러온 힘을 폭발시켜 이교도를 해치웁니다. 마그다는 이방인을 납치합니다.
 
데커드 케인은 남은 생명으로 검을 복구합니다. 그건 대천사 티리엘이 바알에 의해 더럽혀진 세계석을 깨려고 내던졌던 검, 엘드루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을 구한 네팔렘은 그에게 엘드루인을 돌려줍니다. 기억을 되찾은 티리엘은 레아와 함께 케인의 장례를 치릅니다.
 
레아는 장작 더미에 누운 케인의 가슴에 그의 연구서를 올려놓습니다. "그저 이야기일 뿐인데. 아저씨는 보고싶은 것만 보셨지…."
 
이에 티리엘이 말합니다. "케인은 세상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습니다. 그 뜻을 이어가야 합니다."
 
"희생이 뭔지 알기나 해요?"
 
티리엘은 눈 흘기는 레아의 손을 잡고 자신의 기억을 보여줍니다. 여기는 드높은 천상의 앙기리스 의회. 용기의 대천사 임페리우스가 오른손 검지로 아래를 가리키며 소리칩니다.
 
"티리엘! 드높은 천상의 고대 법률은 필멸자 세상에 관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그런 짓을 하다니, 뻔뻔하구나!"
 
"내 죄라면 정의를 실현했다는 것뿐이다. 임페리우스, 넌 옥좌 뒤에 숨었지만 말이다!"
 
"닥쳐라!"
 
티리엘의 멱살을 붙잡은 임페리우스가 무기 '솔라리온'을 겨눕니다. "네 죗값을 당장 치르게 해 주마!"
 
하지만 다툼 끝에 솔라리온을 쥔 건 티리엘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회자되는 티리엘의 명 대사가 이때 나옵니다.
 
"누가 나를 심판하는가! 내가 바로 정의다! 우리에겐 더 큰 숙명이 있다. 무고한 자들을 지키는 것이지. 그러나 그 잘난 법이 그대 모두를 얽맨다면! 이제 형제로 남지 않겠다."
 
바닥에 솔라리온을 내리꽂은 정의의 대천사는 어깨에 붙은 날개를 뜯어냅니다. 그는 천사도 더 큰 선을 위해 규율을 비틀 수 있다는 걸 동족에게 증명합니다.
 
"신성모독이다…."
 
굉음과 함께 파장이 일며 떨어진 날개가 티리엘을 바닥으로 끌어내립니다. 예언대로 하늘에서 정의가 추락한 겁니다.
 
스스로 날개를 뜯어낸 대천사 티리엘이 인간의 육체를 갖게 된다. 바닥에 떨어진 날개가 티리엘을 붙잡고 하늘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다. (사진=블리자드)
 
"그래서 떨어졌습니다. 내 의지로…. 인간만이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레아는 데커드 아저씨와 함께 화장하려던 연구서를 안아들고 눈물로 다짐합니다. "아저씨가 끝내지 못한 그 일, 제가 끝낼게요. 아저씨를 위해서요."
 
검은 영혼석에 일곱 악마 가두다
 
레아와 티리엘, 네팔렘은 거짓의 군주 벨리알이 신임 황제 하칸 2세로 행세하는 칼데움으로 향합니다. 오래 전 모습을 감췄던 레아의 어머니, 아드리아도 합류합니다. 일행은 아드리아의 도움으로 졸툰 쿨레가 만든 검은 영혼석을 찾았습니다. 여기엔 지옥의 일곱 군주 중 다섯 군주의 영혼이 담겨있었습니다. 아드리아는 나머지 군주 벨리알과 아즈모단을 잡으면 수정을 파괴해 악마들을 추방하겠다고 했습니다.
 
네팔렘은 하칸 2세로 변장한 벨리알을 검은영혼석에 가두고, 아즈모단의 지옥 군단이 쏟아져 나오는 아리앗 분화구로 향합니다. 아즈모단은 검은 영혼석에 깃든 여섯 악마와 하나가 돼 궁극의 대악마가 되려고 합니다.
 
네팔렘이 아즈모단을 쓰러트리자 아드리아가 본색을 드러냅니다. 철벽의 성채에서 검은 영혼석을 안정시키던 레아의 몸에 그 돌을 박아 7대 악마의 힘을 가진 디아블로로 환생시킨 겁니다.
 
레아의 몸을 빼앗은 디아블로가 드높은 천상의 관문 다이아몬드 문 앞에서 대천사 임페리우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사진=블리자드)
 
이 마녀가 자기 딸을 디아블로로 만든 이유가 뭘까요. 티리엘이 데커드 케인과 레아의 일기, 자신의 지식을 엮은 '티리엘의 기록'에 전말이 적혀 있습니다.
 
앞서 디아블로를 무찌른 아이단 왕자와 밤을 보낸 아드리아가 사막 도시 칼데움으로 떠났다고 했지요. 아드리아는 트리스트럼 해돋이 여관의 상냥한 여급 질리언을 불렀습니다. 무너진 고향을 떠나 새 출발할 기회를 잡은 질리언이 아드리아를 찾아갔지만, 아드리아는 여기서 낳은 딸 레아를 맡기고 도시를 떠납니다. 몇 년 후 데커드 케인이 찾아갔을 때, 질리언은 딴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차갑고 멍해진 질리언은 이 아이를 위험한 존재로 여겼고, 밤중에 자기 집에 불을 질러 케인과 함께 죽이려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케인이 레아를 돌보게 됐고, 질리언은 칼데움의 정신병원에 갇혔습니다(케지스탄력 1272년).
 
케인은 아드리아를 의심했습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아드리아는 오직 자신의 힘을 키울 목적으로 인간관계를 맺고 끊어왔습니다. 그는 죄악의 전쟁으로 몰락한 삼위일체단의 잔도에 들어가, 마그다와 함께 지도층을 독살해 고문과 악마 소환을 일삼는 집단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디아블로가 깨어난 트리스트럼의 암흑기 즈음 마녀단을 떠납니다. 마그다는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혀 지옥과 접촉하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합니다. 아드리아는 트리스트럼에서 아이단 속에 있는 디아블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아기를 잉태했습니다. 그리고 트리스트럼에서 케인이 말해준 졸툰 쿨레의 흔적, 검은 영혼석을 찾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리운 엄마를 만난 레아는 어머니가 악과 싸우려 힘든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레아는 케인의 아드리아 논문 곳곳에 어머니를 변호하는 글을 적어둡니다. 레아가 철벽의 성채에서 마지막으로 쓴 일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합니다. "아저씨, 전 포기하지 않았어요. 승리가 눈 앞에 있어요. 그리고 그건 어머니 덕분이에요. 아저씨가 여기 계셔서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싸우고 계신지, 어머니가 제게 얼마나 큰 힘을 주고 계신지 보실 수만 있다면…."(티리엘의 기록)
 
일기의 마지막은 레아의 운명을 아는 이들에게 깊은 탄식을 안겨줍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고통이 곧 끝날 거라고 내게 다짐하신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성역의 어머니 릴리트가 증오의 딸이라면, 레아는 눈물의 딸이었습니다.
 
임페리우스가 레아의 껍질을 벗기자 디아블로의 본모습이 나타난다. (사진=블리자드)
 
7대 악마의 힘을 가진 디아블로는 드높은 천상으로 쳐들어갑니다. 천상의 입구 다이아몬드 문 앞에서 임페리우스가 숙적을 맞아 싸우지만, 이미 이 싸움은 일대일이 아니었습니다. 임페리우스의 가슴을 꿰뚫은 디아블로가 비웃습니다.
 
"빛나는 천상을 한 번 더 봐 둬라, 임페리우스. 이제 곧 전부 사라지고, 내 웃음만 남을테니."
 
결국 단 한 번도 뚫린 적 없던 천상의 입구가 무너졌습니다. 드높은 천상은 짓쳐들어온 악마 군대로 아비규환이 됩니다. 천사들은 실의와 낙담에 빠진 채 도륙당합니다. 임페리우스는 뒤늦게 도착한 네팔렘 일행에게 이 모든 게 인간 탓이라며 한 번 더 눈에 띄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후 네팔렘이 희망의 대천사 아우리엘과 운명의 대천사 이테리엘을 구출하고 디아블로가 있는 수정 회랑으로 가지만, 고집불통 임페리우스가 가로막고 네팔렘을 치려 합니다. 티리엘은 미친 짓 그만하고 디아블로를 무찔러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때 임페리우스와 다른 천사들이 빛을 잃고 쓰러집니다. 디아블로가 천사 생명의 근원인 수정 회랑에 들어선 겁니다. 서둘러 수정 회랑에 달려간 필멸자는 디아블로가 만든 공포의 영역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핏빛 대악마를 쓰러뜨립니다.
 
네팔렘은 천사들이 자존심을 내세워 외면하던 어둠과 싸워 이겼습니다. 티리엘은 인간의 몸으로 앙기리스 의회에 돌아갑니다. 정의가 실현됐으니, 이번엔 지혜로 천상을 다스리기로 하며 옥좌에 오릅니다. 그런데 원래 있던 지혜의 대천사, 말티엘은 어디로 간 걸까요.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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