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기자
닫기
강명연

공정위 하도급갑질·조사방해한 현대중공업 제재

'선시공 후계약' 조선업계 관행 적발, 컴퓨터 교체 등 증거인멸 시도

2019-12-18 16:16

조회수 : 2,048

크게 작게
URL 프린트 페이스북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조선업계 내 관행으로 자리잡은 '선시공 후계약' 행위가 적발된 현대중공업이 경쟁당국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중의 공정위 조사방해와 함께 제조원가보다 낮게 하도급단가를 결정한 정황을 포착해 제재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가 제조원가와 하도급대금을 비교해 부당하도급 대금이 있었다고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이 하도급업체들에게 선박, 해양플랜트 엔진제조를 위탁하면서 계약서를 미리 발급하지 않고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삭감한 데 대해 2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고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당 위반행위에 대해 공정위 조사방침이 알려지자 컴퓨터와 외부저장장치(외장HDD) 등을 교체, 은닉한 한국조선해양에는 법인과 임직원 2명에 각각 1억원, 2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행위 당사자인 현대중공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되, 형벌은 승계가 불가능해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법인을 고발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6월 한국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변경, 지주사로 전환하고 기존 사업은 분할신설회사인 현대중공업에 넘겼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207개 사내하도급업체에게 4만8529건의 선박 및 해양플랜트 제조작업을 위탁하면서 작업이 시작된지 최대 416일이 지나서야 계약서를 발급했다. 이로 인해 하도급업체는 구체적인 작업내용과 대금을 모른 채 작업을 진행한 뒤 현대중공업이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아들여야 하는 불리한 지위에 놓였다.
 
2015년 12월에는 선박엔진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사외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2016년 상반기에 일률적으로 단가를 10% 인하해줄 것을 요청했다. 단가인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 2016년 상반기에 48개 하도급업체와 9만여건의 발주계약에서 총 51억원의 하도급대금을 깎았다.
 
유수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48개 하도급업체는 밸브, 파이프, 엔진블록, 판넬 등 납품하는 품목이 다르고 원자재, 거래규모, 경영상황 등도 상이해 일률적으로 단가인하할 사유가 없었다"며 "정당한 사유없는 일률적 단가인하를 금지하는 하도급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이 사내하도급업체와 제조원가보다 낮은 단가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한 행위도 확인됐다. 현중은 작업현장에서 추가공사가 발생할 경우 사내하도급업체에 작업을 지시하고, 현중의 생산부서는 실제 작업에 소요되는 공수(작업물량을 노동시간 단위로 변환한 것)를 산정해 예산부서에 예산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현중의 예산부서는 합리적인 삭감근거 없이 생산부서가 요청한 공수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사내하도급업체에게 지급할 대금을 깎았다.
 
유수현 국장은 "인력 공급이 주요 업무인 사내하도급업체 특성상 제조원가의 대부분이 인건비인 만큼 공정위는 공수당 원가를 토대로 제조원가를 판단했다"며 "현중의 생산부서가 제시했던 실제 노동시간이 근거가 됐는데, 위원회에서 현중은 해당 노동시간이 정확하지 않다는 입장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수 삭감 과정에서 사내하도급업체와 협의절차도 없었다"고 유 국장은 덧붙였다.
 
아울러 아울러 공정위는 작년 10월 현대중공업 본사에 대한 현장조사에 앞서 현중이 관련 증거를 은닉한 정황도 확인했다. 101대 컴퓨터를 숨긴 부서는 조사 2개월 전인 8월 중순 본사건물 내 엘리베이터 CCTV와 직원들의 메신저 대화가 근거자료가 됐다. 외장하드(HDD)를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 교체한 부서는 통상적인 교체작업과 다른 절차를 밟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가 나오니 빠르게 컴퓨터를 바꿔야 한다거나, 다음주에 공정위가 오는데 컴퓨터 교체가 제대로 안돼 윗분들이 압박하고 있다는 등의 메신저 대화내용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교체한 HDD에 대해 공정위는 제출을 요청했지만 현중은 이미 폐기했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공정위는 작년 3월 발표한 사건처리 효율화·신속화 방안을 적용, 신고사건을 포함해 현대중공업의 최근 3년 간 하도급거래 내역을 전수조사해 이번 제재 결정을 내렸다.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갑질 문제가 불거진 이후 공정위 조사가 늦어 증거 확보가 미흡하지 않았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3월 발표를 기반으로 각 지방사무소 처리가 원칙인 신고사건이라도 요건이 갖춰지면 본부에서 직접 처리하기로 함에 따라 본부에서 직권조사가 예측 가능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본부로서는 최근 3년 간 거래내역을 포함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했다"고 윤 국장은 설명했다.
 
세종=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 강명연

  • 뉴스카페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