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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시론)펜타포트

2022-08-25 06:00

조회수 : 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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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믿지 않게 된 숫자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집회 참석인원. 주최측은 늘리고 경찰은 줄이는 마법의 숫자다. 또 하나는 주최측이 발표하는 페스티벌 관객수. 현장에서 보면 어림짐작으로 몇 천이 고작인데 보도자료를 보면 곱하기 10은 된 것 같다. 어른의 사정이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을 둘러싼 숫자는 진작  심상치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3년만에 열린다는 걸 감안해도 그랬다.
 
얼리버드 티켓이 오픈 직후 매진되더니, 추가로 티켓이 오픈될 때 마다 계속 매진됐다. 여러 경로로 확인해본 바, 유료 티켓 판매량이 4만장 이상이었다. 초대권과 이벤트 등 여러 경로로 입장하는 인원을 대략 추산해보면 10만명 안팎이 몰릴 게 확실했다. 19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부터 매해 여름 록 페스티벌을 빠짐없이 다녔던 입장에서, 이 숫자는 컸다. 매우 컸다.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현장 어디에나 많은 인파가 있었다. 무대앞의 잔디밭은 물론이고, 텐트나 돗자리를 펼 수 있는 캠핑존도 발딛을 틈이 없었다. 음식과 음료 부스에는 하루종일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부스까지도 줄이 길었다.
 
2006년 첫 행사가 열리고 2009년 주최측의 분열로 여름 록 페스티벌 시장이 펜타포트와 지산록페스티벌로 나뉜 이래, 펜타는 흥행대박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장의 대세가 힙합,EDM 등으로 넘어가고 페스티벌 소비층도 서울에서 열리는 재즈/어쿠스틱 성향의 행사로 몰리면서 펜타포트의 위치는 갈수록 축소되는 듯 했다. 만약 이 행사가 지자체가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 주최했다면 진작 존폐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안 좋은 흐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3년만에 열린 행사가 화려하게 부활한 이유는‘개더링(gathering)에 대한 욕망이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공연 산업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로인해 대중의 욕망또한 억눌려 있었다. 약 2년의 팬데믹에서 앤데믹으로 전환되는 순간, 욕망이 터질거라는 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대중의 욕망은 왜 펜타포트를 향했을까. 첫 째, 오프라인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펜타포트는 온라인으로나마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해외 라인업은 없었지만 어쨌든 실제 행사장의 무대와 동일한 환경에서 유튜브를 통해 페스티벌을 중계했다. 스튜디오나 제3의 공간이 아닌 실제 무대에서 중계되는 페스티벌에 2년간 적지 않은 시청자가 몰렸다. 그 시청자들 중 상당수가 온라인 중계를 통해 욕망을 대리충족시켰을 것이다. 펜타포트라는 브랜드를 비대면으로나마 인지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둘 째, 라인업의 변화다. 앞서 말했듯 올해 펜타포트에는 특A급 해외 라인업이 없었다. 아니, 해외 참가팀의 비중도 예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신 다양한 국내 팀들을 배치했다. ‘록'이라는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검증된 팀들이 있었다. 크라잉넛, 자우림, 넬 같은 팀이다. 분위기의 보증수표다. 페스티벌이 멈춰있는 시간동안 시장에서 성장한 팀들이 있었다. 잔나비, 새소년, 아도이 같은 팀이다. 케이팝과는 완전히 다른 시장에서 그들은 자생력을 키웠고 때론 차트를 정복하기도 했다. 프레임에서 벗어났으되 이곳 저곳에서 라이브 실력을 증명한 팀들이 있다. 비비와 이승윤 같은 이들말이다. 그 외에도 빛과 소음, 효도앤베이스 처럼 홍대앞 라이브 클럽에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는 젊은 에너지들까지, 다양하되 실속있는 라인업으로 타임테이블을 채웠다기획과 욕망의 무게중심에 펜타포트가 선 순간, 페스티벌은 폭발했다. 무대가 익숙한 팀들은 3년간의 갈망이 만들어낸 관객들의 반응에, 그렇지 않은 팀들은 처음 겪어보는 열기에, 그리고 관객들은 펜타포트만의 고출력 사운드와 ‘함께 있다’는 스스로의 만족감이 융합한 것이다.
 
그렇게 3일이 지난 후 다음 날, 수도권은 거짓말처럼 폭우에 잠겼다. 이번 폭우가 단 하루만 일찍 들이닥쳤어도 생각하기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 과거의 페스티벌들이 그랬듯.그러니  8월 8일,  쏟아지는 비를 보며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3년만의 여름, 3년만의 록페스티벌을 음악의 신이 지켜줬다고. 그리고 바랬다. 신의 가호와 함께 마일스톤을 찍은 올해의 행사를 기점으로, 내년 여름에는 한국 페스티벌 문화가 도래했으면 좋겠다고.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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