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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우리 모두가 지금도 만들고 있는 ‘다음 소희’
18세 여고생 소희, 취업 이후 극단적 선택…우리 사회가 만드는 ‘다음’
누군가의 잘못 아닌 집단과 집단이 모인 사회의 시스템 ‘오류+병폐’
2023-02-07 07:00:43 2023-02-07 07:00:4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리 주변 그리고 사회가 어른이라 부르는 당신들에게 묻습니다. ‘그래서 다음은 누구인가라고. 도대체 뭐가 다음인지. 그리고 누구는 누굴 말하는지. 아마 모르시면서 그렇게 말한 것, 알고 있습니다.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관심도 없단 것 압니다. 그럼에도 계속 그렇게 말 하셨습니다. 버티라고. 그 다음이 되지 말라고. 버텨야 그래도 뭐라도 될 수 있다고. 뭐라도 되기 위해선 버티고 또 버텨야 한다고. 그렇게 간곡하게 말하시니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버텨봤습니다. 그래야 했습니다. 어른들의 말이니까요. 나보다 더 나은 삶,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어른들의 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더 가슴 아프고 더 화가 나고 더 눈물이 나는 건 이것 입니다. 그게 분명 잘못되고 그렇게 하면 안되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인 당신들은. 잘못인 걸 알면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당신들의 말, 잘못입니다. 하지만 더 가슴 아픈 건 그걸 믿고 따르고 의지했던 나 입니다. 그래서 전 다음이 됐습니다. 그리고 제 다음도 그렇게 또 다음을 부를 것입니다. 이제 당신에게 정말 묻겠습니다. ‘그래서 다음은 누구입니까’. 전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지. 가야할 곳은 있는지, 기댈 어른이 있기는 한 건지.
 
 
 
영화 다음 소희’, 극중 소희를 객관화 시킨 질문과 하소연입니다. 영화 속 소희(김시은), 18세 특성화 고교 여학생입니다. 취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소희는 춤을 좋아합니다. 연습실에서 녹초가 될 때까지 추고 또 춥니다. 사실 소희가 춤을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춤을 통해서만 뭔가 증명 받고 싶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격한 몸짓을 통해 자신의 답답하고 도망갈 곳 없는 현실을 소리치고 있던 건지. 그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입니다. 소희는 버티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버티는 것. 한 번 해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취업을 기다리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던 소희. 좋은 소식입니다. 담임 선생님이 활짝 웃습니다. 어렵게 또 어렵게 학교가 마련한 대기업 취업 확정 자리 랍니다. 물론 정규직은 아닙니다. 예비 고졸 여고생에게 대기업 정규직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잘 버티면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 없습니다. 소희는 낯선 환경에서 불안한 마음이 더 앞서지만 버티기 위해 마음을 다잡습니다. 눈을 질끈 감습니다. 귀를 닫아 버립니다. 콜센터에 취업한 소희는 쏟아지는 욕설과 음담패설 감정적 폭력의 굴레 속에서 정신을 잃을 듯합니다. 당연합니다. 이제 겨우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예비 고졸 여고생에겐 너무 잔인하고 가혹한 현실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일단 대기업이라 추켜 세운 담임 선생님의 사탕발림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대기업 계열이지만 하청에 하청에 하청 업체입니다. 그곳에서도 소희는 정규직이 아닌 수습 인턴입니다. 임금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하루 종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보이지 않는 폭력에 소희는 점점 더 지쳐만 가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실적으로만 모두를 평가합니다. 숨이 막힙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버텨야 합니다. 소희는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실질적 가장이나 다름 없는 소희는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서 춤을 추던 그곳이 너무 그립습니다. 그래도 숨을 좀 쉴 수 있던 그런 공간이었는데 말이죠. 어느 날 문득 그래서 갔던 그곳입니다. 자신의 자리에 누군지 모를 사람이 새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도 소희는 밀려 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콜센터에서 버티려고 그랬습니다. 버텨야 합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을 그나마 아껴주던 남자 팀장님이 자살하셨습니다. 쏟아지는 업무 과다와 보이지 않는 모욕적 언사, 부속품 취급을 하는 회사의 행태 등. 버틸 수 없었나 봅니다. 어린 아들과 아내를 두고 팀장님은 뭐가 그렇게 원통해서 삶을 스스로 놓으셨는지. 장례식에 갔습니다. 속상했습니다. 미웠습니다. 그나마 그래도 기댈 수 있던 어른이었는데 말이죠.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그렇게 소희는 다시 일상입니다. 다시 버팁니다. 버티고 또 버팁니다. 미친 듯이 할당량을 채우고 또 채웁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정당한 수당이 안 들어 옵니다. 정규직이 아닌 인턴이라 그렇다 합니다. 동료들은 혼자 월등하게 실적을 올리는 소희를 고깝게 봅니다. 그리고 소희는 팀장님 자리를 봅니다. 맞습니다. 팀장님은 안 계십니다. 새로 온 여자 팀장은 무색무취입니다. 사람 냄새라고 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그저 자신의 일만 하고 있습니다. 소희는 숨이 막힙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살고 싶은데 말이죠. 도망치고 싶은데 말이죠.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빼꼼하게 열린 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 소희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소희는 자신을 부르는 빛을 따라 나갑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음 소희는 소희란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우리 사회의 무관심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스템 여기에 관념의 구조화가 쌓아 올린 견고한 방어적 이미지를 비춰 보여 줍니다. 어떤 무언가, 특정한 인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상화된 객체. 그것들 전부가 문제라 말하지 않습니다. ‘다음 소희속 그것은 소희를 제외한 모든 것이 그렇다 말합니다. 실질적으로 이 영화 속 세계에서 소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속 주인공 앨리스처럼 철저하게 객관화 돼 취급 받습니다. 놀라움을 넘어 잔인할 정도로 소희를 향한 모두의 객관화는 폭력이란 단어로 취급하기엔 한 없이 부족해 보일 정도로 그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더 끔찍한 것은 소희를 향한 폭력의 주체입니다. 쉽게 말해 빌런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음 소희에는 빌런이 없습니다. 이른바 나쁜 어른 그리고 나쁜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하게 착하고 적당하게 버티면서 모두가 소희를 한 곳으로 몰아갑니다. 그들 모두의 의도가 아닙니다. 그저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의 일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희를 제외한 유무형의 모든 감정이 약육강식의 사다리를 짓듯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이빨을 드러낼 뿐입니다. 결국 소희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선택을 당한 것입니다. 잡아 먹힐 것인가 말 것 인가. 만약 후자라면 어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시 말합니다. ‘다음 소희에는 나쁜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소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그래서 소희가 없어진 빈 자리를 향해 외칩니다. ‘다음!’ 이라고.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소희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소희는 몇 번째 였을까요. 그리고 그 다음의 소희는 또 누구일까요. 그 다음을 만든 우리는 도대체 뭔가요.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소희를 벼랑 끝으로 밀어낸 공범입니다. 우린 결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다음 소희는 오는 8일 개봉합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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