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육군사관학교 졸업생 일부가 국민들에게 피해와 고통을 준 사실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며 사과드립니다. (중략) 노병의 한 사람으로서 국군 간부 교육체계를 인공지능(AI) 시대에 적합하게, 그리고 현대전 양상에 부합되게 발전시켜 더욱 강군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9일자 <중앙일보> 1면에 실린 광고 일부다. 이 광고는 육사 33기로 박근혜정부 시절 군인공제회 이사장을 역임한 이상돈 예비역 육군 중장이 개인 명의로 게재한 것이다. 발췌한 내용만 보면 과거 육사 출신 인사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국군의 미래를 위해 육사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광고가 주장하는 바는 전혀 반대다. '호국의 성지 화랑대(육사의 애칭)를 아파트로 짓밟아 버리지 않게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육사 출신이 중심이 돼 내란을 도모하는 일이 없도록 과거와의 절연을 선언하는 동시에, 미래전쟁 양상에 대비하는 차원의 사관학교 개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육사 개혁을 아파트를 짓기 위한 일로 치부해 버렸다.
이재명정부는 육사를 포함해 사관학교 교육체계의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전쟁양상의 변화, 인구절벽에 따른 병역자원과 학령인구 감소, 초급간부 충원 어려움 등에 직면한 현실에서 미래 강군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80년간 이어져온 현재의 사관학교 제도로는 앞으로 맞이할 안보 현실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어 근본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게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인식이다. 안 장관은 선발·육성·임관까지 큰 흐름에서 다영역 작전을 요하는 합동성과 현대전 문법을 익힐 수 있는 사관학교 제도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안 장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7일 육사를 방문한 데 이어 10일에는 해사를 방문했다. 조만간 공사도 방문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장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이를 향후 사관학교 발전 방안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사관학교 개혁의 명분이나 국민적 공감대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육사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사관학교 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육사 폐교' '국가적 재앙' 등을 주장하며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중앙일보> 1면 광고도 이런 여론전의 하나로 보인다. 박판준 육사 총동창회장은 지난 3월 사관학교 개혁에 반대하는 '액션플랜 2026'을 수립해 실행에 옮기고 있다. 최근 육사 총동창회 홈페이지에는 '사관학교 통폐합 육사말살 당면대책활동(안)'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다음주엔 삼각지 한 식당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한다고 한다.
육사를 포함한 사관학교 출신들이 지난 80년간 국가안보를 지켜온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12·3 내란과 같이 육사 출신들이 국민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린 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육사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변해야 할 조직이다. 지금은 과거와의 절연을 선언하고, 미래 전쟁에 대비하는 교육체계로 거듭나야 할 때다.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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