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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세상읽기)결핵과 혜성
2017-03-24 06:00:00 2017-03-24 06:00:00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가수 지영선이 부른 '가슴앓이'라는 노래의 후렴구다. '가슴앓이'는 조금 어색해도 '가스마리'로 읽어야 한다. 국어사전에는 '안타까워 마음속으로만 애달파하는 일'이라고 한다. 뭐 애달프다고 해서 실제로 가슴에 통증이 있기야 하겠는가? 실제 가슴이 아픈 병은 따로 있다. 바로 결핵이다. 결핵을 다른 말로 가슴앓이라고 했다.
 
결핵은 우리 집의 내력이다. 할아버지가 결핵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와 동생이 결핵을 앓았다. 나는 아버지 또는 동생이 결핵을 앓는 동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앓았다. 치료와 위로는 커녕 다른 가족 간호에 거추장스런 존재로 한동안 지내야 했다. 이 사실은 나중에 독일에서 유학생이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보건소 검진에서 알았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다.
 
지금은 결핵 앓은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핵은 가장 무서운 질병 가운데 하나였다. 이광수, 조지 오웰, 이상, 프란츠 카프카, 쇼팽 같은 유명한 문필가와 예술가들을 요절(夭折)시킨 게 바로 결핵이다. 결핵균은 수천 년 동안이나 인간을 괴롭혔다. 주로 폐에 잘 걸리지만 몸 어느 곳에나 발생할 수 있고 기침, 콧물, 가래뿐만 아니라 공기로도 전파된다. 100명에게 감염되면 그 가운데 10명이 발병하며, 치료를 받지 않으면 5명이 사망한다.
 
요즘도 결핵 환자가 있을까? 있다. 아주 많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결핵균에 감염되어 있다. 매년 930만명의 새로운 환자가 등장하고 180만명이 결핵으로 사망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의 3분의 1이 감염되어 있고, 매년 3만 5000명의 환자가 새로 생기며, 2000명이 결핵으로 사망한다.
 
결핵의 원인이 결핵균인 것은 당연한 일같지만 이것을 밝힌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로베르트 코흐.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다. 코흐와 재혼한 젊은 아내 프라이베르크가 그 주인공이다. 프라이베르크가 큰 돈을 들여 사준 현미경에 코흐는 사로잡혔다. 그리고 마침내 결핵균을 발견했다. 질병의 원인균을 밝혔으니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예술가와 문필가의 요절 시대는 끝이 났다. 현미경 만세! 코흐의 아내 프라이베르크 만세!
 
"저 빛을 따라가, 혜성이 되어 저 하늘을 날아 봐, 내 맘을 전하게 그대에게 데려가, 별을 내려봐."
 
가수 윤하가 부른 노래 '혜성'의 후렴이다. 노래에서는 혜성이 되어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윤하가 이 노래를 중세시대에 불렀다면 마녀 재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혜성의 출현은 불길한 조짐으로 해석됐다. 네로는 혜성이 나타나면 겁에 질려 신하를 죽였고, 조선의 왕들도 혜성이 나타나면 역모의 반역의 징조로 받아들이고 경계했다.
 
혜성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밝힌 사람은 에드먼드 핼리다. 어릴 때부터 핼리 혜성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핼리 혜성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 혜성인 줄 알았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1986년 핼리 혜성이 등장했을 때는 책으로 핼리 혜성을 공부하기만 했을 뿐 밤하늘을 볼 생각은 못 했다. 망원경이 없으면 못 보는 줄 알았다. 10년 후인 1996년 봄 나는 독일에서 햐쿠타케 혜성의 긴 꼬리를 맨눈으로 봤다. 그 때의 경이로움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하쿠타케 혜성에 관심을 갖게 된 까닭은 3년 전인 1994년 여름에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이 목성과 충돌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천체 관측 사상 최고의 사건이었다. 목성에 대난리가 났다. 그 혜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면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6600만 년 전 공룡 멸종 사건과 같은 대멸종이 일어났을 것이다. 슈메이커-레비 혜성의 목성 충돌은 우주를 떠도는 천체에 대한 인류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일으켰다. 모르면 공포가 생긴다. 알면 괜찮다. 대비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알려면 봐야 한다. 천체망원경 만세!
 
1882년 3월24일 로베르트 코흐는 아내가 사준 현미경으로 결핵균을 발견했다. 그리고 1993년 3월24일 슈메이커 부부와 레비는 망원경으로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2017년 3월24일에는 무엇을 통해서 어떤 걸 발견할까? 오늘은 차분하게 각 당의 대통령 후보와 정책들을 살펴보면 어떨까? 코흐의 현미경처럼 후보를 세밀하게 살펴보자. 악마는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슈메이커와 레비의 망원경처럼 멀리 내다보자.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오래 살아남아야 하니까 말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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