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석의 재계시각)증가하는 ‘반감고객’, 재계는 속수무책
“총수들 상당수 구시대적 사고 머물러, 방안 마련 어려움”
입력 : 2018-07-08 14:23:17 수정 : 2018-07-08 14:49:45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성난 여론이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초토화시켰다. 재벌의 갑질은 과거처럼 더 이상 감출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총수 일가의 잘못에 고객들은 이탈하고, 내부는 집단저항에 나서며, 여론은 집중포화를 퍼붓는다. 재벌개혁으로 대변되는 경제민주화는 현 정부의 최우선 정책과제 중 하나다. 이를 지켜보는 4대그룹 한 고위 관계자는 착잡한 어조로 “고객들의 분노가 일상화됐다. 여론도 예전 같지 않다"며 "결국 우리의 책임이다. 미리미리 대비했어야 했는데, 대응이 늦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총수의 갑질에 불만과 반감을 지닌 ‘반감고객’이 늘면서 재계는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소통 시스템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수백억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6일 오전 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의 지적대로 재계는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대비책을 마련 중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곤혹을 치뤘던 삼성전자는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최우선 순위로 두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차그룹도 지배구조 개편안 추진이 좌절된 주요 요인으로 소액 주주들을 비롯한 고객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판단에 따라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권에 속한 LG그룹조차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일련의 사태가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구경만 할 단계는 지났다. 재계 전체로 확산된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은 집중관리 대상을 불만과 반감을 지닌 부정적 고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015년 발간한 ‘반감고객들’에서 “많은 기업이 자극적인 마케팅에 동조하고 즐거워하는 소비자들에게 주의력을 쏟느라 실망과 분노를 쌓아가는 반감고객의 존재는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반감고객을 주도하는 계층이 외부고객에서 ‘내부고객’인 직원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은 기업의 소통 시스템 문제가 매우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직원들이 직접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총수의 갑질과 비리를 폭로하고,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공유하며, 거리로 뛰어나가 집회를 열고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총수 일가가 연루된 갑질 행위를 내부 직원들로부터 확인한 외부고객들이 받은 충격과 실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총수가 의례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거나 해명에만 일관하고, 충분하다고 생각지 않는 금전적 보상 등으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기업들의 소극적 대처는 고객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다. 소비자는 기업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자신을 가치 있는 고객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돼 분노감이 상승한다. 최 교수는 “고객들은 자신이 직접 입은 손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정하거나 진실하지 않은 기업 행태에 대해서도 비난 여론에 동참하고 부정적 감정을 표출한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불쾌한 경험을 겪은 소비자 중 불만을 직접 전달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며, 80%는 조용히 문제를 일으킨 기업과 이별한다. 이런데도 많은 기업들은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고객관리의 개선은 부족하고 불편한 모습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 감정까지 받아들이며 신뢰를 쌓아가는 관계로 바꿔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도 “하지만 적지 않은 총수들은 불만 고객은 조용히 처리하고, 외부 집회 참여 직원은 징계대상이라는 식의 구시대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어 변화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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