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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배필이란 무엇인가?
2018-10-26 06:00:00 2018-10-26 06:00:00
 
우리 집에는 세 딸이 산다. 다행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원리대로 나를 전혀 닮지 않은 나이 지긋하신 따님은 이미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유전자의 힘을 거역하지 못하고 나를 빼닮은 두 딸은 언젠가는 배필을 만나야 한다. 가만, 그런데 배필이란 무엇인가? 배필은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이번에 사전에서 처음 찾아봤다. 配匹이라고 쓴다. 짝 배, 짝 필. 사전에는 ‘부부로서의 짝’이라고 간단히 나온다. 그냥 짝이라고 하면 충분한 말이다.
 
그렇다면 배필 그러니까 짝은 누가 찾는가? 38억 년 전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당시 그 누구도 짝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는데 만족했다. 짝짓기를 하는 유성생식은 불과 10억 년 전에야 시작됐다. 배필을 찾아 짝을 짓는 행위는 비밀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외로운 투쟁이었다. 남이 배필을 찾아주는 종은 지구에 단 한 종, 바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즉, 현대인뿐이다. 그 외 모든 지구 생명은 스스로 짝을 찾는다.
 
최종적인 배필 결정권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에게 있다. 이유가 있다. 짝짓기야 말로 생명의 지고지순한 사명이다. 짝짓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짝짓기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을 남겨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짝짓기는 당장의 쾌감이라는 보상으로 만족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또 순간적으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므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암컷은 긴 임신과 양육 기간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암컷은 짝짓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암컷을 놓고 싸우는 수컷들이 많다. 아이들이 박치기공룡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라는 공룡이 있다. 돔 모양의 두개골은 두께가 20센티미터에 달할 정도다. 이 두개골로 박치기하며 겨뤘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현생 동물인 큰뿔양도 마찬가지다. 큰뿔양의 뿔은 길이가 1.5미터, 무게가 14킬로그램에 달한다. 발정기가 되면 암컷을 차지하려고 다툰다. 수컷 두 마리가 10미터 밖에서 달려와서 큰 뿔로 서로 받아 박치기를 한다.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한다. 물론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싸우지는 않는다. 밀린 수컷은 깨끗하게 승복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동물들은 정말 신사적이다. 
 
이제 이긴 수컷이 암컷을 차지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다른 수컷에게 이겨봤자 암컷이 선택하지 않으면 말짱 헛짓이다. 다른 암컷을 찾아가서 그 앞에서 또 다른 수컷과 겨뤄야 한다.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의 승리가 짝짓기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결정권을 가진 암컷은 신중하다. 왜? 암컷은 수컷과 달리 자손을 위해 투자해야 할 자원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의 수컷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암컷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되는 동물들도 있다. 뉴기니의 극락조들은 멋진 둥지를 짓는다. 팔도 없이 부리만으로 그 아름다운 집을 지으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둥지가 화려하다고 알을 낳아 키우기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암컷 마음에 드는 멋진 둥지를 지은 수컷만이 짝짓기 기회를 얻는다. 때로는 멋진 둥지 대신 화려한 춤과 노래를 자랑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월 17일자 <로열 소사이어티 프로시딩>에는 518종의 새들이 짝짓기 하는 방식을 연구한 옥스퍼드 생물학자들의 논문이 실렸다. 일정한 경향이 있었다.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아름다운 종의 경우 수컷의 노래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암컷과 수컷의 외모가 비슷한 경우에는 수컷의 음역이 훨씬 넓었다. 수컷은 집을 짓는 기술이나 노래 실력 또는 화려한 외모로 승부한다. 그런데 하나만 잘하면 된다. 하나에만 집중하면 된다. 암컷들은 오직 하나만 보고 배필을 결정한다.
 
현대인은 아주 특이한 생명체다. 스스로 배필을 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결혼중개업체가 소개한 이상적인 남편의 조건은 복잡하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으로서 연봉은 5000만원이 넘고, 2억7300만원의 자산을 이미 소유해야 하고 키는 177센티미터는 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람도 배필을 찾는 기준이 단순하면 좋겠다. 하지만 남성들이여 새를 비롯한 자연을 부러워하지는 말자. 지구에 사는 모든 수컷 가운데 단 4~5퍼센트만이 짝짓기에 성공한다.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정말 복 받은 거다. 나를 선택한 우리 장인어른의 따님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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