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오퍼튜니티 님의 침묵
입력 : 2019-02-15 06:00:00 수정 : 2019-02-15 06:00:00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쌍둥이 형제 로버(움직이는 탐사 로봇)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탐사 프로그램의 일원이다. 여태 인류가 도달한 가장 먼 천체는 달이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무려 38만킬로미터. 지구 지름의 30배에 해당하고,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도는 빛이 도달하는 데도 1.3초가 걸리는 곳이다. 하지만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간 화성은 달보다 훨씬 먼 곳이다.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을 때도 무려 5460만 킬로미터. 빛의 속도로 여행해도 무려 3분 2초가 걸린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2003년 6월10일과 7월7일에 각각 길을 나섰다. 화성에는 2004년 1월4일과 25일에 도착했다. 오퍼튜니티가 착륙한 곳은 메리디아니 평원의 이글 크레이터 곁이었다. 3주 전에 스피릿이 착륙한 곳과는 정 반대편이다. 두 로버는 높이가 1.5미터, 길이는 2.3미터, 무게는 185킬로그램이다. 골프 전동카트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메인컴퓨터는 IBM RAD6000. 16MHz의 CPU, 28MB의 DRAM, 256MB의 플래시 메모리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추억의 모델이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두 로버의 기본 임무는 90일 동안 흙과 암석을 조사하고 화성의 풍경을 찍어서 지구에 보내는 일이다. 여기에 필요한 장비를 장착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화성에서 물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지구 밖에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한 것. 
 
스피릿은 화성에 도착하자마자 플래시 메모리에 에러가 발생했다. 이틀간 통신이 두절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스피릿은 자신을 만든 과학자를 비롯한 만민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해결책을 작동했다. 재부팅! 8일 동안 스스로 껐다 켰다 하기를 66번을 반복했다. 사투 끝에 다시 살아났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오퍼튜니티는 화성 내부를 관찰하기 위해 과감하게 인듀런스 크레이터 내부로 들어가 6개월 동안 탐사했다. 여기서 메리디아니 평원이 물에 잠겼다가 다시 말랐던 흔적을 발견했다. 화성에 물이 있었다는 지질학적 증거를 수집한 것이다. 2005년 1월 오퍼튜니티는 인듀런스 크레이터를 빠져나온 후 거의 1년 전 자신이 착륙할 때 분리된 방열판을 지나게 되었는데, 바로 옆에서 이상한 암석을 발견했다. 화성 암석과는 현저히 달랐다. 이것은 화성 표면에서 최초로 발견된 운석이었다. 스피릿은 2006년 4월6일 앞바퀴가 작동을 멈추자 그때부터 후진으로 뒷걸음질치며 탐사했다.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2004년 10월13일 오퍼튜니티 카메라에 서리가 끼었다. 11월17일에는 구름을 발견했다. 다음날에는 구름이 더 짙어졌다. 하지만 스피릿 카메라에는 서리가 끼지 않았고 구름도 찍히지 않았다. 양쪽의 기후가 달랐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두 로버가 보내는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사진에 눈이 멀었다.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오퍼튜니티의 다음 목표는 인듀런스보다 지름이 8배 정도 큰 빅토리아 크레이터였다. 겨우 6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지만 초속 5센티미터로 움직이는 오퍼튜니티에게는 가혹하게 먼 곳이었다. 오퍼튜니티가 느리게 움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워낙 무거운 데다가 오로지 태양에너지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거리나 경사보다 무서운 게 모래였다. 태양전지판에 모래가 덮이면 꼼짝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래폭풍이 태양전지에 쌓인 모래와 먼지를 깨끗이 날려준 덕분에 임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스피릿은 2009년 5월 트로이 크레이터에서 바퀴가 모래에 빠져 움직이지 못했다. 구출작전은 실패했고 2010년 1월 그의 임무는 종료됐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과학자들이 예상한 90일보다 훨씬 오래 생존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2018년 6월 모래폭풍으로 작동이 정지된 오퍼튜니티는 이후 침묵하고 있다. 지난 2월13일 NASA는 15년 동안 45킬로미터를 탐험한 오퍼튜니티에게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을 다시 만날 것이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우리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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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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