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정 거버넌스 어제

81년의 침묵을 깨고, 외면받던 그 이름들을 다함께 부르다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서울 추모제가 남긴 역사적 소명 -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하늘이 무너지듯 갈라지며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이 펼쳐졌다.

인류 최초로 실전 사용된 원자폭탄은 단 몇 초 만에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수십만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그 참혹한 폭발의 중심에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강제동원으로 고향을 떠나와 억지로 타향살이를 하던 약 10만 명의 조선인들이 존재했고, 그중 무려 5만여 명이 현장에서, 혹은 피폭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다. 조국 해방의 기쁨을 불과 며칠 눈앞에 두고도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스러져간 원통한 영령들이었다.

하지만 8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역사의 진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왜곡되어 왔다.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과 식민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정당한 배상을 철저히 외면한 채, 원폭 피해국이라는 일방적 '피해자 코스프레' 뒤로 숨어 헌법 개정과 군사대국화를 꿈꾸며 또다시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한편, 민간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살상을 초래한 미국 역시 국제질서 구축과 핵무기 위력 과시라는 정치·군사적 목적 아래 반인도적 원폭 투하를 감행했음에도, '전쟁을 조기 종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역사적 책임과 진상규명을 미루어 왔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본이었고, 원폭을 투하해 조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미국이었지만, 그 사이에서 이중·삼중의 잔혹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조선인 희생자들의 역사는 국제사회와 역사의 무대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외면받아 온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불의와 오랫동안 계속된 침묵에 맞서기 위해, 지난 2026년 8월 6일 서울 향린교회에서는 의미 깊은 연대의 장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81년 조선인 희생자 서울 추모제’가 바로 그 현장이다. 이번 추모제는 어느 특정 단체나 일방의 주도로 이루어진 행사가 아니었다. 개신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종교의 담을 넘어 마음을 모았고, 수십 년 간 역사의 현장을 지켜온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의로운 뜻을 품은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다른 교리와 신념을 내려놓고,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생명과 평화를 지키겠다는 거룩한 가치 아래 굳건히 손을 잡은 것이다.

이날 거행된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여기, 조선인이 있다!”라는 선언을 외치며 시민선언문을 발표하고 일본과 미국의 공식적인 사과 및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력히 촉구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서도 국민을 보호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회복시켜야 할 국가적 책임을 엄중히 물었다. 원폭의 참상은 81년 전 1세대 생존자에서 멈추지 않았다. 방사능 후유증이라는 희귀 질환과 사회적 차별, 그리고 유전적 불안감이라는 차디찬 그림자가 되어 2세와 3세 후손들에게까지 세대를 이어 전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시혜성 지원을 넘어, 피해자 중심의 원폭특별법을 즉각 개정하여 2세·3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권리보장을 제도화해야 하며, 민관협력을 바탕으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사업이 시급히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력히 피력되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은 두 개의 역사적 사건에서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다. 바로 1923년 간토 대지진 당시 일어난 조선인 학살과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이다.

간토대지진에서 조선인 학살은 가짜뉴스와 혐오가 만들어낸 일본 경찰과 군대, 자경단이 자행한 조직적 폭력이었다. 폭력으로 이어지는 이 가짜뉴스와 혐오는 103년 전 만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더 강력해진 채, 국내외 정세를 흔들고 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피해 조선인들은 원폭 잔해 제거 사업에 재 투입되면 그 희생이 늘어났지만, 일본은 일본인들의 희생만을 부각한 채, 그 뒤에 숨겨진 식민지 조선인 희생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과거의 아픔을 다시 불러내어 잊혀진 이름들을 증언하는 까닭은 단순히 슬픔을 되새기거나 과거의 굴레에 갇혀 있기 위함이 아니다. 강대국들의 이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 숨겨졌던 조선인 희생자들의 존재를 밝혀내는 행위는, 거짓된 역사를 바로잡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평화의 이정표를 세우는 근본적인 실천이다.

81년 전 타향의 차디찬 잿더미 속에서 스러져간 조선인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동포가 다 함께 손잡는 공동추모제로 나아가는 길. 나아가 전 세계 평화애호가들과 연대하여 핵 없는 세상과 참된 평화를 이루어내는 것. 8월 6일 향린교회에서 모인 4대 종단과 시민사회, 그리고 시민들의 뜨거운 추모와 평화의 선언은 역사의 억울한 영령들에게 바치는 가장 존엄한 위로이자, 우리 사회가 끝까지 이어가야 할 거룩한 평화의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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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잘나가는용띠 P · 어제

전남친 P · 2시간 전

조선인 원폭 희생자들의 존재와 아픔을 8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증언해야 한다는 뜻이 깊게 와닿네요. 잊혀진 이름들을 함께 부르고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추모제가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