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을 막는 것만으로 안전해질 수 있을까. 호주의 실험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
밤늦게까지 짧은 영상을 넘겨보는 아이를 보면 휴대전화를 빼앗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악성 댓글과 단체 대화방 따돌림, 낯선 사람의 접근, 끝없는 외모 비교까지 생각하면 “일정 나이 전에는 SNS를 못 쓰게 하자”는 주장도 무리하게 들리지 않는다. 어른조차 화면을 끄기 어려운데, 아직 자라는 아이에게 스스로 절제하라고만 말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이 고민에 가장 강한 답을 내놓은 나라가 호주다. 호주는 2025년 12월 10일부터 주요 SNS가 16세 미만 호주 이용자의 계정 보유를 막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흔히 ‘SNS 금지법’이라 부르지만 아이나 부모를 처벌하는 법은 아니다. 의무를 어긴 플랫폼이 최대 5,460만 호주달러의 민사상 벌금을 물 수 있다. 메신저·게임·교육·보건 서비스 상당수는 제외되고, 로그인 없이 공개 콘텐츠를 보는 것까지 막지는 않는다. 핵심은 아이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의 책임을 키운 데 있다. (호주 eSafety 안내)
초기 숫자만 보면 변화는 컸다. 호주 온라인안전 규제기관 eSafety는 시행을 전후한 2025년 12월 전반에 주요 업체들이 16세 미만으로 확인한 계정 약 470만 개의 접근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아이 470만 명’이 아니라 여러 플랫폼에 흩어진 계정 수다.
더 중요한 것은 이후의 생활 변화다. eSafety가 같은 가정을 추적해 2026년 7월 공개한 초기 평가에서 당시 10~15세 803명 가운데 제한 대상 플랫폼 계정을 하나 이상 가진 비율은 52.4%에서 42.1%로 낮아졌다. 반면 최근 4주간 자녀의 SNS 사용을 부모가 몰랐다는 비율은 23.3%에서 33.3%로 올랐다. 수면과 자존감, 심리적 고통,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에서는 아직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문은 닫히기 시작했지만 일부 이용은 더 안쪽으로 숨은 셈이다. (초기 계정 제한 결과, 시행 3개월 초기 평가)
한국도 이 논의를 남의 일로 볼 수 없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2025년 조사에서 만 10~19세 스마트폰 이용자의 43.0%가 과의존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전 연령 가운데 가장 높았고 전년보다 0.4%포인트 늘었다. 또 같은 기관의 사이버폭력 조사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청소년 9,296명 가운데 42.3%가 가해·피해 또는 두 경험을 모두 포함한 사이버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물론 스마트폰 과의존이 곧 SNS 중독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이버폭력 역시 SNS뿐 아니라 메신저와 온라인게임 등에서 발생한다. 이 숫자만으로 SNS 금지의 효과가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현재의 이용 환경이 충분히 안전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스마트폰 과의존 조사, 사이버폭력 조사)
나는 호주가 던진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 지금까지 SNS 문제가 생기면 대책은 주로 부모의 감독과 아이의 자제력에 머물렀다. 하지만 자동 재생과 무한 스크롤, 사라지는 게시물, 쉴 새 없는 알림과 정교한 추천은 이용 시간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아이에게만 “그만 봐”라고 하는 것은 한쪽에서는 계속 단것을 권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의지로 참으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일정 연령까지 계정 이용을 늦추면 “친구들도 다 한다”는 압박을 한 가정이 홀로 견디지 않아도 된다. 플랫폼 역시 어린 이용자를 붙잡는 기능은 그대로 둔 채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넘기기 어려워진다. 이 점에서 사회가 공통의 보호선을 만드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호주식 제한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계정 가입을 막아도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 계정을 빌리거나 나이를 속일 수 있고, 규제가 약한 메신저나 게임, 작은 서비스로 이동할 수도 있다. 호주 eSafety도 대체 서비스가 반드시 안전한 것은 아니라며 이용자 이동을 살피고 있다. 몰래 사용하다 피해를 입으면 “금지된 일을 했다”는 생각 때문에 부모나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온라인 관계가 단순한 시간 낭비만은 아니라는 점도 살펴야 한다. 학교에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를 찾기 어렵거나 현실에서 고립감을 느끼는 청소년에게 온라인 공동체는 연결과 도움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보호한다며 그 통로를 한꺼번에 끊으면 오히려 가장 외로운 아이에게 더 큰 공백을 만들 수 있다. 금지가 모든 아이에게 같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연령 확인에도 대가가 따른다. 호주 지침을 보면 플랫폼은 이용자가 적은 생년월일만 믿지 않고 계정 활동 기간과 언어 수준, 얼굴·음성의 나이 추정, 학교 시간표와 비슷한 접속 양상까지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우회를 막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성인과 청소년 모두에게 개인정보 부담과 오판의 위험을 만든다. 안전을 위한 제도가 더 많은 감시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신분증을 유일한 확인 방법으로 강요하지 않고, 수집 자료는 목적 달성 후 삭제하며, 잘못 차단됐을 때 사람이 신속히 심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는 ‘나이의 벽’ 하나보다 ‘나이에 맞는 설계’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 16세 미만 계정은 처음부터 비공개로 설정하고, 모르는 사람의 메시지와 위치 공유, 맞춤형 광고, 심야 알림을 기본적으로 막아야 한다. 자동 재생과 무한 스크롤에는 중단 지점을 만들고, 추천 알고리즘이 자해·혐오·성적 콘텐츠를 반복해서 보여 주지 않는지 외부 검증을 받게 해야 한다.
라이브 방송이나 공개 댓글처럼 위험성이 큰 기능은 연령에 따라 단계적으로 열고, 신고·삭제·상담 연결은 아이가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플랫폼이 청소년의 관심을 오래 붙잡을수록 돈을 버는 구조를 손보지 않으면 가입 버튼만 막는 대책은 오래가기 어렵다.
학교와 가정의 역할도 “하지 마”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가짜 정보를 확인하는 방법, 단체 대화방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 증거를 남기고 신고하는 방법, 사적인 사진을 요구받았을 때 도움을 구하는 방법을 실제 사례로 배워야 한다. 부모도 감시 앱만 설치하기보다 아이가 실수해도 먼저 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금지는 접속을 늦출 수 있지만 판단하는 힘까지 길러 주지는 못한다.
나는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아무 제한 없이 두자는 입장이 아니다. 호주처럼 책임의 무게를 아이와 부모에게서 플랫폼으로 옮기고, 사회가 분명한 보호선을 만드는 시도는 필요하다. 다만 나이 하나로 계정 문을 닫으면 문제가 끝난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한국이 제도를 논의한다면 단계적 연령 제한, 기능별 안전장치, 개인정보를 최소화한 연령 확인, 디지털 교육과 상담을 한 묶음으로 설계해야 한다. 우리가 막아야 할 것은 청소년의 관계가 아니라 아이의 약한 자제력을 수익으로 바꾸는 설계다.
문을 잠그는 것만으로 골목이 안전해지지는 않는다. 아이를 온라인에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보다 아이가 들어가는 공간을 덜 중독적이고 덜 위험하게 바꾸는 일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