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MBC 〈실화탐사대〉에서 ‘안녕, 피터팬’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보았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살아가야 할 아들의 거처를 찾아 전국의 장애인 시설을 찾아다니는 내용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 이야기가 나와 이렇게 가까운 이야기인 줄은 몰랐다.
방송을 본 뒤 과 동문회 채팅방에서 주인공이 나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한 전경철 선배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화면 속에서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시설의 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우리 과 선배’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알고 있던 학교와 학과의 이름이 한 사람의 삶과 연결되자 방송에서 보았던 장면들도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전경철 선배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 《안녕, 피터팬》도 지난 6월 출간됐다. 책에는 간암 말기인 아버지가 스물일곱 살 중증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들을 홀로 키워온 시간이 담겼다. 아들은 말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고 일상생활에서도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자신의 죽음이었을까. 아마 죽음 그 자체보다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이 살아갈 날들이었을 것이다.
방송에서 선배님은 아들이 머물 곳을 찾기 위해 여러 시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입소 불가’인 경우가 많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 아들의 삶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평생 돌봄’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했다.
중증발달장애인은 성인이 됐다고 해서 부모의 돌봄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식사와 위생 같은 기본적인 생활부터 병원 진료, 안전, 의사소통, 외출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계속 필요한 경우가 있다. 부모가 곁에 있을 때는 가족의 사랑과 희생으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부모도 늙고 병들고 결국 세상을 떠난다.
그때 누가 그 사람의 곁에 남을 것인가.
이 질문을 부모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부모가 평생 자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가족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가 중병에 걸리거나 고령이 되면 그동안 가족 안에서 감당해온 돌봄의 한계가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시설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이 아니다. 사람마다 필요한 돌봄의 방식이 다른 만큼 선택할 수 있는 주거와 지원체계가 있어야 한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안전하고 전문적인 거처가 마련돼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지원주택과 활동지원, 의료·재활서비스가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직 건강할 때부터 자녀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부모가 쓰러진 뒤에야 대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고려해 미리 주거와 돌봄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방송 이후 다행스러운 변화도 있었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후원이 이어졌고, 결국 제원씨가 365일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거처를 찾게 됐다. 7월 방송된 〈실화탐사대〉 후속편에서도 그 과정이 소개됐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이 남는다.
모든 부모가 방송에 출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장애인 가족에게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삶이 방송을 만나고 후원자를 만나야 비로소 안전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개인에게 찾아온 행운이지 사회가 마련한 제도라고 말하기 어렵다.
전경철 선배님은 이제 자신의 아들을 위한 네버랜드를 넘어 다른 ‘피터팬’들을 위한 네버랜드를 꿈꾸고 있다. 부모가 떠난 뒤에도 중증발달장애인이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선배님의 이야기를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그동안 중증발달장애인의 삶을 너무 멀리 있는 문제로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생각해보면 선배님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세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가 없어도 밥을 먹고, 병원에 가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안전하게 잠들 수 있는 평범한 하루일 것이다.
그 평범한 하루를 부모의 희생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전경철 선배님의 이야기는 한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을 넘어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를 보여준다. 부모가 먼저 떠나도 자녀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선배님이 꿈꾸는 네버랜드는 아마 그런 곳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네버랜드를 만드는 일은 가족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몫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