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
짜고미 거버넌스 3일 전

차례를 없앴는데도 왜 명절은 힘들까

명절증후군의 원인은 차례상일까? 전을 부치고, 고기를 재고, 야채를 다지다 보면 명절이 끝나고, 허리도 아프고 손목과 손가락에 통증도 남는 그 집중된 가사노동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차례가 사라지면 명절증후군도 줄어야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례상은 점덤 사라지고 있는데 아직도 명절은 여전히 피곤하다.

2025년 추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 명절 차례상을 차린다는 응답은 40.4%였다. 2016년 74.4%에서 크게 줄었다.

우리 시댁도, 친정도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세 끼 가운데 한 끼는 외식을 한다.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간소해진 명절이다. 그런데도 명절이 끝나면 여전히 많이 피곤하다.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먹고 난 뒤 치우는 일이 대부분 주부 한사람 몫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차례상은 없어졌지만 온 가족 밥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밥상을 차리고 치우는 그 한 사람 몫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을 맞아 식구들이 먹을 정도의 장을 보려고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두 곳에서 혼자 장을 봤다. 그런데 두 곳 모두 명절 장을 보러 나온 부부가 꽤 많았다. 명절 장보기라 양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는다. 대부분 은퇴한 듯한 중년 이상의 부부였고, 마트에서는 젊은 부부가 나란히 카트를 미는 모습은 거의 보기 어려웠다. 물론 이것만으로 세대의 명절 풍경을 단정할 수는 없다. 젊은 맞벌이 부부라면 장을 볼 시간 자체가 없을 수도 있고 부모 집에서 명절을 보내면 직접 장을 볼 필요는 없을테니까.

젊은 세대가 명절을 덜 챙기는 것일까. 아니면 명절을 준비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에 굳이 챙길 필요가 없는 것일까. 차례를 지내지 않는 젊은 부부가 부모의 집을 찾아가 차려진 밥상을 받는다면 명절 노동은 없어진 것일까. 아닐 수 있다. 노동의 담당자가 바뀐 것뿐이다. 아래 세대가 하지 않는 일을 부모 세대가 떠안는다면 명절은 누구에게 편해진 것인가.

명절 노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있다.

해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직장과 일상적인 가사노동에 명절 준비까지 겹치는 여성의 부담을 ‘홀리데이 트리플 시프트’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도 명절 음식인 조림음식 오세치를 직접 만들기보다 사서 먹는 가정이 늘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단다. 가족을 만나는 일과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는 일을 반드시 한 묶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25년 추석에는 인천공항 이용객이 하루 평균 21만7천613명으로 역대 추석 연휴 가운데 가장 많았다. 전년 추석과 비교하면 약 6.4% 증가한 수치다. 해외 카드 이용도 전년 추석보다 늘었다. 신한카드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추석 연휴 해외 관련 일평균 이용 건수는 전년보다 40.5% 증가했고, 해외 이용금액도 37.7% 늘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 가족을 외면하는 일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호텔에서 밥을 먹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고 명절이 잘 못지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은 남겨두면서 음식 준비와 설거지 같은 노동은 밖에서 해결하도록 빼내는 선택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동안 가족을 위한 노동을 가족 안에서 해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특히 여성에게는 더 그랬다. 이제는 밀키트나 완성된 음식을 사고, 여행도 간다. 가족을 위한 여성의 노동에도 가격표가 붙어서 계산이 시작된 셈이다.

이제 명절을 지킬 것인가, 버릴 것인가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가족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남겨두되, 대부분 여성이 맡게 되는 명절 노동을 당연한 봉사처럼 여기지 않는 방법을 찾아 움직이는 방향으로 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차례를 없앴는데도 명절이 힘들다면 차례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명절 노동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옮겨갔기 때문이다. 명절에 온 도시가 멈춘 듯 모든 가게와 식당들이 문을 닫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변하고 있다. 추석 당일에도 문을 여는 곳은 편의점뿐만이 아니다. 식당과 카페도 문을 여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명절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명절에 가족이 함께하는 방법이 꼭 가정의 부엌일 필요는 없다.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외식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사노동을 덜어내면서도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명절의 모습이 더 다양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답글 1 댓글 2 공유

이 글의 답글 1개

다른 사람들은 이 주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남겼을까요?

내일 08:50 AI가 답글·인용·좋아요 반영해 점수 재판단

댓글 2개
마토 P · 3일 전

명절 노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있다. 이 한줄이 모든걸 설명해주네요. 명확한 분석 b

성
성하기 G · 3일 전

명절에 가족이 함께하는 방법이 꼭 가정의 부엌일 필요는 없다.